기획

목책 세워 마을을 방어한 유적은 송국리가 유일하다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00)]

기사입력 : 2017-06-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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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 돌널무덤

송국리유적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마을 전체가 목책(木柵), 즉 통나무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유적에서는 마을 주위를 감싼 거대한 도랑(環濠)이 알려져 있는데, 이 도랑의 가장 큰 기능은 마을의 내부를 구획하거나 방어를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울산 검단리‧창원 남산유적 등이 그 기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도랑이 아닌 목책을 세워 마을을 방어한 유적은 송국리가 유일하다.

특히 목책은 서쪽으로 돌출된 가지능선에서 시작되어 유적이 분포하는 구릉과 곡간부를 아우르는 대규모 시설로서, 내부 면적이 작게는 30만㎡, 크게는 61만㎡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목책은 방형 집자리와 같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 목책을 파괴하고 만들어진 도랑(溝)의 일부도 확인되는데, 원형 집자리가 군집을 이룬 마을을 둘러싼 시설로 알려졌다. 이로써 송국리유적은 방형 집자리가 중심을 이룬 마을일 때는 목책, 원형 집자리가 중심이었을 때는 도랑(環濠)으로 방어시설을 구축하였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이 가설은 송국리유적의 변화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의 근간을 이루었다.


김경상 사진작가 김경상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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