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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일(韓日)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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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일(韓日)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근린궁핍화정책의 악순환 되풀이....‘규제 대못’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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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고등학교 소속 여학생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계추를 34년 전으로 돌려보자.

1980년대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은 일본 기업의 독무대였다. NEC를 비롯해 도시바, 히타치 등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1~3위를 거머쥐면서 PC 핵심부품 시장을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일본 기업이 독식한 반도체시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은 결국 보호무역주의 카드를 꺼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와 마이크론·AMD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은 일본이 자국 기업에 수 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미국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며 1985년 6월 미 무역대표부에 제소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의 파상공세에 일본은 무릎을 꿇고 1986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다. 일본 시장에서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10%에서 20%로 늘리고 일본 D램 수출가격도 올린다는 내용이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결국 가격경쟁력을 잃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미-일 반도체 분쟁은 ‘미국 최우선주의’를 내세운 ‘레이거노믹스’의 한 단면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전보를 올린 레이건은 그 기세를 몰아 1985년 9월 또다시 일본 팔을 비틀어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플라자 합의까지 일궈냈다. 플라자합의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촉발한 신호탄이 될 줄을 일본도 몰랐을 것이다.

미국의 ‘일본 반도체-금융산업 죽이기’는 ‘양털깎기(Fleecing of the flock)‘다. 양털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던 주인이 어느날 털(수익)을 깎는다는 뜻이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宋鴻兵) 중국 환구재경연구원장 설명처럼 미국이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와 금융산업을 지켜본 후 반덤핑 조사와 엔화강세 등 융단폭격으로 일본 경제를 와해시킨 것이다.
패권 경쟁은 반복되는 것일까. 일본정부의 최근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살펴보면 ‘양털깎기’의 데자뷔가 떠오른다. 일본이 한국 경제 핵심축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비수를 꽂은 야비한 행태만 봐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일본은 수출규제가 전략물자 관리 부실에 따른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용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용기와 지성이 없는 일본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근린궁핍화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의 최대 피해자였던 일본이 가해자로 돌변해 한국을 공격하는 모습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일본 희생을 통해 번영과 경기회복을 일궈낸 경제정책을 한국에 써먹으려는 작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베 정부가 세계 반도체 시장 핵심축인 한국의 발목을 잡아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하는 행태를 당장 철회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국제사회 비난을 받는 ‘외로운 섬’으로 고립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우리 정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첨단 신소재 개발에 따른 온갖 ‘규제 대못’을 뽑아야 한다.

정부는 2013년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과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통과시켜 화학물질 연구개발(R&D)을 저해하는 자충수를 뒀다.

한국이 세계 제1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섰지만 핵심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게 된 데에는 화관법과 화평법 등 각종 환경 규제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소재-부품 국산화를 막은 규제 대못을 6년간 애써 외면해온 정부가 이제는 대기업이 부품 국산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일본과의 ‘신(新)경제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규제를 일부 완화하거나 부품 국산화에 대한 예산을 마지못해 늘리는 미온적 태도로는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길목을 막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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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