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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리버풀 바르셀로나 말도 안되는 기적 4-0, 토트넘 아약스 승자와 챔스 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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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리버풀 바르셀로나 말도 안되는 기적 4-0, 토트넘 아약스 승자와 챔스 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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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리버풀 바르셀로나


리버풀이 바르셀로나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

리버풀은 1차전에서 0-3 대패를 당했으나 2차전에서 4-0으로 대승함으로써 토털 스코어 4-3을 기록 결승에 진출했다. .

리버풀은 전반 7분 바르셀로나의 헤딩 실수를 틈타 공을 잡은 조던 헨더슨은 문전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어 슈팅을 날렸다.

튕겨 나온 볼을 오리기가 차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9분 측면에서 상대 수비의 골을 빼앗은 리버풀의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는 문전으로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쇄도하던 조르지니오 베이날둠은 이를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해 바르셀로나의 골망을 흔들었다.

한편 손흥민은 본머스전 퇴장으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7일 손흥민과 후안 포이스와 함께 3경기 동안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일부 팬들은 손흥민 퇴장에 흥민은 마스터클래스다. 스스로 휴식을 취했다”, “적어도 아약스 원정에서 가벼운 컨디션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토트넘은 아약스와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치른다

여기에는 손흥민이 뛸 수 잇다.

UEFA 챔피언스리그(UEFA Champions League)는 유럽 축구 연맹이 주관하는,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축구 클럽들을 대상으로 매년 열리는 클럽 축구 대회이다. 1955년에 시작되었다. 유러피언컵(European Cup)으로 불리다가 1992년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되었다. 보다 비중이 약한 대회인 UEFA 유로파리그와 이미 폐지된 UEFA 컵위너스컵과 비교된다.

해마다 7월쯤 시작되는 토너먼트 형식의 예선전을 통과한 10개 팀들과 조별 리그에 자동 진출한 22개 팀을 합친 총 32개 팀들이 8개 조로 나뉘어 각 조별로 4개 팀씩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본선 경기를 치른다. 매년 12월에 모든 조별 리그전이 종료되면, 각 조의 1, 2위 팀은 그 다음 해 2월부터 5월까지 계속되는 16강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또 각 조의 3위 팀은 UEFA 유로파리그의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가장 최근 우승 팀은 2018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올림피스키 경기장에서 리버풀을 꺾고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이다.

이 대회는, 유럽 프로 축구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이다. 대회 결승전은 보통 유럽 프로 축구의 모든 시즌 일정 가운데 가장 마지막 경기로 치러진다. 또한 유럽 대륙의 축구 선수들이 이적을 고려할 시에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경기 출전이 가능한 팀인가를 우선 순위로 고려할 정도이다.

줄여서 '챔스', 'UC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UEFA 챔피언스리그의 대표곡은 리그 데 샹피옹 (Ligue des Champions)이다.
유럽의 각 국 리그의 우승 팀간의 경기로, 유럽 챔피언 클럽 대회에서 유러피언컵 대회로 간소화된 이 대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럽 축구 연맹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스포츠지 레키프의 편집자인 가브리엘 아노에 의해 시작된 대회이다.[1]

이 대회는 양 팀간 녹아웃 형식으로 1955-56 시즌부터 시작되었다. 각 팀들은 홈에서 한 경기를, 원정에서 한 경기를 치러 더 많은 승점(혹은 득점)을 얻은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자격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참가 자격이 있는 팀은 각 국내 리그의 우승 팀과, 유러피언컵을 보유한 팀뿐이었다. 이러한 예선 방식은 1992년까지 계속되었다.

1992/93 시즌부터 이 대회는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명되었고 1997/98 시즌부터 각국 리그 챔피언과 전년도 우승 팀만 참여하던 것에서 UEFA 점수에 따라서 성적이 좋은 리그 2위 팀들도 대회 참여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고 1999/2000 시즌부터는 현재처럼 상위 3개의 리그는 리그 4위 팀들까지 대회참여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2]

1991/92 시즌부터 토너먼트에 앞서 조별리그제를 도입하였다. 현재의 시스템은 2009년부터 적용되고 있다. 1960년부터 2004년까지의 본선 우승 팀은 현재는 없어진 인터콘티넨탈컵(코파 리베르타도레스우승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 이후로는 FIFA가 대회를 인계받아, 우승 팀은 자동적으로 다른 대륙의 클럽 선수권대회 우승 팀들과 함께 FIFA 클럽 월드컵의 출전권을 획득한다.

암스테르담스허 풋볼 클럽 아약스(네덜란드어: Amsterdamsche Football Club Ajax ˈaːjɑks[*]) 혹은 AFC 아약스(AFC Ajax), 아약스 암스테르담(Ajax Amsterdam)은 암스테르담을 연고지로 하는 네덜란드의 프로 축구 클럽이다. 역사적으로 아약스(전설적인 그리스 영웅의 이름을 따 명명)는 네덜란드의 가장 성공적인 클럽으로, 에레디비시를 33회 우승하였고, KNVB컵을 18회 우승하였다. PSV 에인트호번과 페예노르트와 더불어, 이 클럽은 네덜란드 축구를 지배한 "빅3"를 형성하며,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3팀 중 하나이다.

아약스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들 중 하나이다; IFFHS에 의하면, 아약스는 20세기에 7번째로 성공적인 유럽 클럽이다.[2] 이 클럽은 유러피언컵의 영구 소유 권한을 가진 5개의 클럽들 중 하나로, 명예 배지를 착용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아약스는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을 제패하였다. 1972년에는 에레디비시, KNVB컵, 그리고 유러피언컵을 우승하며 대륙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아약스가 획득한 마지막 국제대회 트로피는 인터콘티넨털컵 1995와 결승전에서 밀란을 격파하고 획득한 UEFA 챔피언스리그 1994-95의 우승 트로피이다. 아약스는 유벤투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995-96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다. 아약스는 대륙 트레블과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같은 해에 달성한 3팀 중 하나이다.[3] 이 업적은 1971-72 시즌에 달성하였다.[4] 아약스는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첼시와 더불어 3개의 UEFA 주요 클럽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는 네 클럽들 중 하나이다.[5] 아약스는 인터콘티넨털컵을 두 차례 우승하였고, UEFA컵 1991-92도 우승하였으며, 1962년에는 UEFA 인터토토컵의 전신인 칼 라판 컵도 우승하였다.[6] 아약스는 1996년에 처음 개장한 요한 크라위프 아레나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그 이전에는 더 메이르 스타디온과 암스테르담 올림픽 경기장 (국제 경기) 에서 홈경기를 개최했다.

아약스는 1900년 3월 18일, 암스테르담에서 창단되었다. 1911년, 클럽은 네덜란드 1부 리그에 승격되었으며, 1917년에 네덜란드 국가 컵대회인 KNVB 베커를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주요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다음 시즌, 아약스는 처음으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클럽은 1918-19 시즌에 리그를 우승하였으며, 네덜란드 축구 리그 선수권에서 무패우승을 거둔 유일한 팀이 되었다.

1920년대에 아약스는 지역 강호였으며, 서부 에이르스터 클라세를 1921년, 1927년과 1928년에 우승하였으나, 이러한 성공을 국가 단위 대회에서 거두지는 못하였다. 1930년대로 넘어가면서 위상이 변하였고, 클럽은 5차례 리그를 우승 (1930-31, 1931-32, 1933-34, 1936-37, 1938-39) 하였으며, 이 시기에 가장 성공적인 네덜란드 팀으로 비상하였다. 아약스는 1942-43 시즌에 두 번째 KNVB컵을 우승하였고, 1917년 KNVB컵 우승 당시부터 3차례나 클럽을 지휘했던 잉글랜드의 잭 레이놀드가 맡은 마지막 시즌인 1946-47 시즌에는 8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7][8]

1956년, 새 프로 리그인 에레디비시가 출범하였고, 에레디비시 첫 시즌에 아약스는 원년 멤버로 참가하였다. 암스테르담 연고의 클럽은 이 새로 출범한 리그의 초대 우승팀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유러피언컵에 데뷔하였으나, 8강에서 헝가리 챔피언 버셔시에게 합계 2-6으로 패하였다. 팀은 1959-60 시즌에 또다시 에레디비시 우승을 차지하였고, 1961년에는 3번째 KNVB컵 우승을 거두었다.

요한 크라위프는 아약스에서 1959년부터 1973년까지, 또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활약하며 3번의 유러피언컵을 우승하였다; 그의 등번호였던 14번은 아약스가 영구 결번시킨 유일한 번호이다. 크라위프는 1985년에 클럽에 돌아와 1988년까지 감독을 역임하였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클럽에서 선수로 활약하였던 리뉘스 미헐스는 1965년에 아약스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아약스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명사가 된 그의 토털 풋볼 철학을 주입시켰다.[9][10] 그로부터 1년 전,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회자될 요한 크라위프가 데뷔하였다.[11] 미헐스와 크루이프의 협력으로 아약스는 클럽 역사상 황금기를 맞이하였는데, 이 시기에 클럽은 7차례의 에레디비시, 4번의 KNVB컵, 3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아약스는 1965-66, 1966-67, 그리고 1967-68 시즌의 에레디비시 우승을 거두었고, 1969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밀란에게 패하였다. 1966-67 시즌, 아약스는 에레디비시에서 기록적인 122골을 득점하였고, KNVB컵도 우승하여 역사상 첫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하였다. 1969-70 시즈, 아약스는 5시즌 안에 4번째 리그 우승과 함께 두번째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하였고, 이때 34번의 리그 경기에서 27번의 경기에서 승리하였고, 100골이나 득점하였다.

1970-71 시즌, 아약스는 KNVB컵 타이틀을 방어하였고, 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디크 판 데이크와 아리 한의 연속골로 파나티나이코스를 2-0으로 격파하고 처음으로 대륙 챔피언이 되었으며, 크라위프는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 성공을 거둔 후, 미헐스는 클럽을 떠나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역임하게 되었고, 후임으로 루마니아의 슈테판 코바치가 사령탑에 취임하였다. 코바치의 첫 시즌에, 아약스는 유러피언컵, 에레디비시 우승과 함께 KNVB컵 3연패에 성공하면서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그 다음 시즌, 팀은 아르헨티나 클럽 인디펜디엔테를 꺾고 인터콘티넨털컵 1972를 우승하였으며, 에레디비시와 유러피언컵 타이틀을 방어하였고,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이래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을 3연패한 클럽이 되었다.

1973년, 미헐스의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를 카탈루냐로 데려가면서 세계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였다. 코바치 또한 시즌 종료 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기 위해 클럽을 떠났고, 이는 클럽 전성기의 종말에 신호탄이 되었다.

1976-77 시즌, 아약스는 4시즌 만에 처음으로 리그를 우승하였고, 그 다음 시즌에는 에레디비시와 KNVB컵 더블을 달성하였다.

1980년대 초, 요한 크라위프가 클럽에 복귀하였고, 마르코 판 바스턴이나 프랑크 레이카르트같은 신예 선수들이 등장하였다. 팀은 1981-82 시즌과 1982-83 시즌에 에레디비시 2연패를 성공하였고, 이 세 선수들이 모두 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크라위프가 1983년에 라이벌 구단 페예노르트로 매각된 뒤, 판 바스턴은 아약스의 주요 선수가 되었고, 1983-84 시즌부터 1986-87 시즌까지 4시즌 연속으로 에레디비시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12]

1985년, 크라위프는 아약스 감독으로 클럽에 복귀하였고, 그가 부임한 첫 시즌을 34경기 120골로 마쳤다. 그러나, 아약스는 PSV 에인트호번과 승점 8점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 다음 시즌, 아약스는 PSV에게 또다시 에레디비시 타이틀을 내주어야 했으나,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거두며, 14년만에 처음으로 대륙 우승을 하였다. 그 후, 크라위프는 클럽을 떠나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되었고, 레이카르트와 판 바스턴은 각각 스포르팅 CP와 밀란으로 매각되었다. 팀 주축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아약스는 이듬 해인 1988년에도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벨기에의 메헬렌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988-89 시즌, 1986년에 크라위프 감독 지도 하에 데뷔하였던 젊은 공격수 데니스 베르흐캄프가 아약스의 주전 골잡이가 되었다. 베르흐캄프는 아약스가 에레디비시 1989-90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1990-91 시즌, 1991-92 시즌, 그리고 1992-93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루이스 판 할 감독의 지도 하에, 아약스는 1992년에 UEFA컵을 우승하였고, 이로써 아약스는 유벤투스에 이어 3개의 주요 유럽대회를 모두 우승한 두번째 클럽이 되었다.

베르흐캄프가 1993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하자, 판 할은 프랑크와 로날트 더 부르, 에드빈 판 데르 사르, 클라렌서 세이도르프, 엣하르 다비츠, 마이컬 레이저허르, 그리고 빈스톤 보하르더 등의 아카데미 졸업생들과 피니디 조지, 은완코 카누, 그리고 야리 리트마넨등의 민첩한 외국 용병, 그리고 베테랑 주장 다니 블린트로 구성된 젊은 아약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재영입하였다.[13] 팀은 1993-94 시즌에 네덜란드 정상을 탈환하였고, 1994-95 시즌과 1995-96 시즌에도 우승을 거두며 1968년 이래 아약스는 처음으로 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다. 판 할 시대의 성공 정점은 1994-95 시즌에 찾아왔는데, 아약스는 이 시즌에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에레디비시를 무패우승한 클럽이 되었다.[14] 이 팀은 밀란과의 199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시 18세였던 파트리크 클라위버르트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영광의 1970년대 이후로는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을 획득하였다. 아약스는 이듬해 결승전에도 올랐으나, 유벤투스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다.

아약스의 유럽 정상 지위로의 기간을 판 할과 몇 명의 주축 선수들이 대륙의 더 큰 클럽들로 이적하면서 금새 끝나버렸다. 2000년대는 클럽이 추락하는 시기로, 이 시기에 고작 두 차례의 에레디비시를 우승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아약스의 아카데미는 계속해서 베슬레이 스네이더르나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와 같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하였다.

2010년, 프랑크 더 부르는 아약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0-11 시즌에 팀을 7년만의 리그 우승이자 기록적인 30번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에도 같은 업적을 달성하며 1990년대 이래 더 부르 감독이 선수였던 시절에 이룬 업적과 동률을 이루었다. 2013-14 시즌, 아약스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에레디비시 4연패에 성공하였다.[15]

토트넘 홋스퍼 FC(영어: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토트넘 홋스퍼 축구단)는 잉글랜드 북런던 토트넘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 구단이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으며, 간단히 줄여서 토트넘 또는 스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7-18 시즌의 홈 경기장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이전의 홈 경기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을 철거한 자리에 62,062석 규모의 새로운 홈 경기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신축을 위해 임대하여 사용했다.

1882년에 창단한 토트넘은 1901년 FA컵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이는 잉글리시 풋볼 리그 창립 이후 유일하게 논리그구단이 우승한 기록으로 남았다. 1950-51시즌과 1960-61시즌에 풋볼 리그 1부에서 우승하였고, 1961년 FA컵과 리그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더블을 기록하였다. 이듬해에도 FA컵에서 우승했으며, 1963년 영국의 축구 구단 중 첫 번째로 UEFA 컵위너스컵을 들어 올렸다. 1970년대에 리그컵에서 두번 우승하였으며, 1972년 UEFA컵을 초대 우승하였다. 1980년대에 FA컵에서 두 번, FA 커뮤니티 실드와 UEFA컵에서 각각 한 번씩 우승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 FA컵과 리그컵에서 우승하고, 2008년 리그컵에서 한 번 더 우승함으로써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모든 연대에서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구단의 상징은 축구공 위에 서있는 수평아리(싸움닭)이고, 모토는 라틴어인"Audere est Facere"로 실천이 곧 도전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런던 연고의 팀들과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라이벌으로는 북런던 더비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아스널이다.

현재 감독은 포체티노이며, 주장은 위고 요리스, 부주장은 해리 케인이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