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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5단지 재건축 지연 놓고 서울시-시교육청 "네 탓" 책임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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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5단지 재건축 지연 놓고 서울시-시교육청 "네 탓" 책임전가

서울시 "교육청이 단지내 학교 환경평가 안해" vs 교육청 "학교부지 기부채납 제외는 위법"
잠실5단지 조합원 1천여명 박원순시장 규탄 시위, 재건축 조기진행 약속 촉구 '압박'

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원 1000여명이 박원순 시장에게 재건축 승인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명현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원 1000여명이 박원순 시장에게 재건축 승인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명현 기자
조합원 집단행동을 촉발시킨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사업 지연의 원인이 다름아닌 단지 내 들어설 초등학교의 교육환경영향평가 실시를 놓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간 대립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양자가 서로 전혀 물러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아 ‘재건축 조기 진행’을 바라는 잠실주공5단지 주민의 속을 들끓게 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1000여 명의 잠실5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조합원들이 모여 '잠실5단지 재건축 승인 촉구를 위한 2만 조합원 궐기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은 '거짓말쟁이 박원순', '행정갑질 중단' 등이 비난 문구가 적힌 종이피켓을 치켜들고 박 시장과 서울시를 일제히 규탄했다.

정복문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장을 포함한 조합임원 5명은 삭발식을 감행하며 서울시에 재건축 승인을 압박했다.

정 조합장은 "지난 2017년 3월 박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은 틀에 박힌 아파트 대신 관광지에 걸맞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아파트 단지를 위해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진행하면 재건축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서명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조합은 박 시장의 약속을 믿고 2017년 약 36억 원을 들여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진행했다. 이어 2018년 3월 서울시는 국제현상공모 당선작을 선정하고 4월 조합에 결과를 통보했다.

당선작 선정에 앞서 같은 해 9월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과 서울시는 공모 업무를 전담할 별도기구인 수권소위원회를 두기로 하고 수권소위에 공모 결과를 보고하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당선작 선정이 끝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시는 수권소위를 열지 않고 있다.

수권소위가 열리지 않은 이유를 서울시는 '학교 문제'를 지적했다. 재건축사업을 하면 서울시교육청이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하는데 교육청이 하지 않고 있어 교육청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재건축에 따라 초등학교 위치를 옮기게 될 경우 그 적합성을 검토하는 절차이다.

잠실5단지 내 남쪽 한가운데에 신천초등학교가 있다. 재건축이 이뤄지면 신천초교 바로 남쪽에 40층 이상의 호텔과 판매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학생들이 일조권이나 주변환경 등에서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신천초교의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서울시가 학교 부지를 기부채납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시교육청은 주장한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 11월 '서울시장 방침 제208호'를 공표해 도시정비사업에서 신천초교 부지를 기부채납 대상에서 제외했다.

교육계에서는 이같은 서울시 방침이 다분히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학교용지법)에 따르면 재건축사업을 추진할 경우 조합은 학교용지 확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학교용지부담금'을 내야 한다. 단, 조합이 사업부지 내 학교용지를 '기부채납' 하면 학교용지부담금을 면제받는다.

교육계에 따르면, 학교용지법은 조합이 '기부채납'과 '부담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서울시장의 '기부채납 제외 방침'은 복수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위법적이자 실정법을 '형해화‘(형태만 남고 내용이 없어짐) 하는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신천초교를 호텔 등 상업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단지 내 북서쪽으로 옮기는 방안으로 이미 조합측과 협의를 마쳤다며, 학교용지법을 위반하는 박 시장의 방침에 맞춰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서울시는 서울시장 '방침'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기부채납으로 부담금을 면제받는 것이 '이중혜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학교부지를 기부채납 대상에서 제외하면 서울시의 부담은 달라질 것이 없지만 교육청으로서는 재정적 부담이 커진다"며 "박 시장이 이 방침을 만든 것은 자신의 핵심 정책인 '임대주택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재건축 사업 지연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조합원이라는 점이다.

9일 시위에 참가한 60대 남자 조합원은 "이 아파트 주민은 여기서 30년 이상 살아온 60~70대 1주택 소유자가 대부분"이라며 "정부와 서울시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에 따른 집값 폭등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50대의 다른 조합원(여)도 "국제설계공모전만 끝나면 곧바로 승인될 줄 알고 당선작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았지만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강경입장을 밝히며 "녹물이 나오는 수돗물, 하수구 냄새와 곰팡이 등 때문에 더이상 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박원순 시장은 이러한 집단행동을 의식한 듯 전날인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골목길 재생 시민정책 대화' 행사에서 "얼굴은 말끔한 것 같지만 저는 피를 흘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층고를 높여달라, 용적율을 높여달라 (요구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잠실5단지 재건축 사업은 송파구 잠실동 242-27 일대 30개동, 15층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는 대단지 사업이다. 1978년 입주 이후 현재 4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이다.


김철훈·유명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