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데스크 칼럼] 이해찬 세대와 축적의 길

공유
0

[데스크 칼럼] 이해찬 세대와 축적의 길

이재구 정보과학기술부장
이재구 정보과학기술부장
[글로벌이코노믹 이재구 기자] “‘48세’ 미만의 엔지니어 가운데 제대로 쓸 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얼마 전 만난 중소 IT업체 사장의 실토였다. 중소기업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업력 30년의 경영자이자 프로그래밍 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그의 얘기 가운데에는 귀기울일 만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50대 중반인 그가 찝어 말한 ‘48세’는 이른바 ‘이해찬 세대’의 분기점이 되는 나이다. 1998년 고교교육(대학입시)시스템이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방식으로 바뀌기 전 수험생 세대다. 그는 지금까지 ‘이해찬 세대’와 이전 세대가 공존해 왔지만 이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고 산업은 물론 국가적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고교교육 시스템을 바꾼 것은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해찬 현 여당 대표다. 그는 ‘학습 부담 경감’을 위해 야간 자율 학습·0교시를 폐지하고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학생들이 '공부에 덜 신경쓰게' 하는 동시에 '공부 이외의 다양한 과외활동까지 신경쓰게' 만들었다. 이후 고교교육 하향 평준화 시스템 논란이 이어졌다.

이는 또한 “중요한 성공의 사다리 하나를 사라지게 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전 고교생들은 ‘공부만 잘하면’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당시 이른바 ‘강남 부유층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많이 간다는 주장도 그르지 않았지만 동시에 ‘없는 집안’의 똑똑한 아이들도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학종 시스템 하에서 바뀌었다. ‘없는 집 똑똑한 아이들’에게 공부 외에도 할 것이 많아졌다. 공부 외에도 돈들이거나,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것들이 추가됐다. 결국 이들이 ‘강남 부유층 아이들’과 ‘공부만으로 맞짱 뜰’ 기회조차 사라지게 됐다.

하향평준화, 그리고 교과학습 이외의 것까지 신경쓰게 만든 학종의 부작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성공 사다리를 구성하는 대학마저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1년간 ‘경쟁적 공부’시스템을 방치한 부작용이 고스란히 대학교로 넘어 가면서 시작된다. 잘 닦여진 고교 교육 토대없이 제대로 된 대학교육이 될 리 없다. 우리나라 최고 수재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공대생 가운데 이과의 기본인 미적분을 못푸는 사람이 있었고, 영어 원서 독해조차 제대로 안되는 학생까지 나왔다는 얘기도 이미 구문이다. 학종과 수시 등으로 인력 자원배분이 왜곡되자 1980~90년대에 과별로 1~2명은 나왔던 특출한 학생이 이젠 단과대에서 한명 나오기도 힘들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 추천이면 세계적 명문대는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이젠 그렇지만도 않단다. 서울대만의 사례,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얘기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대한민국 최고대학 서울대의 현주소라면 여타 대학의 경우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이 ‘공부경쟁의 끈’을 느슨하게 하며 국가경쟁력의 끈을 늦춘 이해찬 시스템의 근간이 유지돼 온 것은 미스터리다.

위기는 꼭 이럴 오는 법. 최근 중국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반도체 산업이 세계 1위 한국을 급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 교육이 ‘덜 공부해도 되는’ 환경에서 ‘더 공부해야 하는’ 환경 환경’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리는 소 등에 붙은 귀찮은 등에와도 같다. 또다시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만만치 않은 홍역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더 이상 하향 평준화 기반의 ‘공부부담 덜 지우는(공부 덜시키는)’ 고교교육 시스템을 방치하면 국가 성공사다리가 무너진다. 어떤 게 국가 장래를 위해 좋은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지금 우리는 힘들게 만들어 온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을 이어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과기정통부 장관도 자유로울 수 없다.
dml


이재구 기자 jk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