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의 막이 오르면서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그룹을 총괄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저마다 경영철학 색깔을 내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아왔던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 구 회장은 모두 올해 경영권을 사실상 넘겨받는 만큼 이번 정기 주총은 이들이 그룹의 본류(本流)임을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자리다. 또한 이들은 이번 주총을 기점으로 총수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만큼 이들의 주총 행보는 향후 경영기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이 이번 주총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대내외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부회장은 20일 열리는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오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오는 10월 삼성전자 사내이사 임기가 마무리 된다. 이는 국정농단 사건 관련 상고심이 진행 중이란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임기 만료 전 임시주총을 열어 재선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상고심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자칫 이 부회장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경우 경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직책 대신 현장 행보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부터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협력사 등과 광폭 경영 행보를 보여온 이 부회장은 올해도 현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이 올해 별도의 주총을 거쳐 사내이사에 재선임되면 향후 대표이사나 이사회 의장 등으로 역할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은 책임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각각 22일 주총에서 정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고 이어지는 별도 이사회에서 정 수석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정의선 시대’를 공식화하는 행보다. 정 부회장은 기아자동차 정기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돼 기아차 경영을 둘러싼 모든 법적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도 기존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에 이어 기아차까지 총 4개 핵심 계열사 사내이사를 겸임해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당초 정 부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뿐 아니라 기아차 대표이사까지 맡을 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복수 계열사 대표이사 겸직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사내이사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주주친화 정책의 하나로 올해 배당금 확대, 자사주 추가매입, 기 보유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늦어도 올 하반기 추진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린 행보로 읽힌다. 책임경영과 투명성, 주주가치 제고 등을 통해 현 정부 기조와 궤를 같이하면서 우호적 경영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특히 정 부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반대에 나섰던 미국계 행동주의 엘리엇과의 힘겨루기에서도 승기를 잡은 상황이다.
LG그룹은 구본준 부회장의 등기이사 퇴장을 통해 ‘구광모 시대’를 공식화 했다. 구 회장은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분리해 자율경영을 강화하는 등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 집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이사회를 열고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을 대신해 권영수 ㈜LG 부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LG전자 사내이사는 권 부회장을 비롯해 조성진 부회장, 정도현 LG전자 대표이사 CFO(최고재무책임자) 사장 등 3명으로 재편성 됐다. 이들은 ‘구광모 체제’의 핵심역할을 하게 됐다. LG디스플레이도 같은날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권 부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는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던 형태를 벗어나 각자 역할에 집중하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LG그룹은 26일 지주사 ㈜LG 주총을 마지막으로 ‘그룹 전열 재정비’를 마치고 구광모 시대를 본격화한다. 고(故)구본무 회장 동생으로 LG그룹 2대 주주 구본준 부회장은 LG전자와 LG화학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고 ㈜LG 부회장 자리에서 내려올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SK그룹 지주회사 SK(주)는 27일 정기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염재호 전(前) 고려대 총장을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안건이 통과되면 최태원 회장은 임기 만료에 따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 경영에만 주력할 방침이다.
민철 기자 minc07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