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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있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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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있는 금융당국

[글로벌이코노믹 최성해 기자] 금융당국이 초법적 움직임에 증권가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 법리를 검토한 뒤 투자나 신규사업에 나선들 당국의 눈 밖에서 벗어나면 되레 범죄자 신세가 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의 자본시장법 위반혐의가 대표적이다. 발단은 특수목적회사(SPC)의 대출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7년 8월 발행어음 조달자금을 특수목적회사(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에 빌려줬다. 자금규모는 1673억원이다. 그 뒤 특수목적회사(SPC)인 키스아이비 제16차는 이 자금으로 계열사의 지분 19.4%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키스아이비제16차는 최태원 모그룹회장과 총수익스와프(TRS)계약을 맺었다.

TRS(총수익스왑)는 가격변동 위험까지 상대방에게 이전시키고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계약쌍방이 서로 공유하는 신용파생거래다. 이 그룹 회장은 TRS계약을 통해 주가변동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을 부담해주며 결과적으로 계열사의 지분 19.4%를 확보했다.

이 모든 과정을 순수하게 법적으로 따지면 크게 문제가 없다. 대출주체는 특수목적회사(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로 엄연히 회사간 거래다.

하지만 당국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발행어음자금이 TRS계약을 통해 모그룹 회장의 계열사 매입자금으로 대출했다고 보고 있다. 실질적 대출주체가 재벌회장 개인으로 발행어음자금이 개인대출로 쓰였다는 것이다.

당국의 판단대로라면 이 거래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단기금융업의 경우 개인신용공여 및 기업금융 업무와 관련없는 파생상품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당국의 이같은 판단이 상법과 정면배치된다는 점이다. 상법상 SPC는 외감법(외부회계감사 대상기준)의 적용을 받는 주식회사이자 상근인력이 없는 서류상 회사다. 법적인 형식은 일반회사와 다를 바 없다. 법대로 하면 한국투자증권이 SPC에게 해준 대출주체는 상법상 개인이 아니라 회사라는 것이다.
당국의 판단을 보면 이 상법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당국의 해석도 100% 틀린 것은 아니다. 발행어음인가의 취지는 기업금융활성화다. 때문에 발행어음을 자기자본 4조원인 초대형IB에게 허용할 인가 당시 조달자금은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50% 이상, 부동산 관련 자산에 30% 미만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기업금융에 투자하라고 빗장을 열어준 발행어음이 대기업 회장의 지분확보에 쓰이니 분통이 터졌을 당국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SPC=회사’라는 상법을 부정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당국의 말대로 SPC와 TRS의 구조를 활용해 우회적으로 개인대출을 했다면 처음부터 이같은 허점을 막지 못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 좀 더 꼼꼼히 규제나 조항을 만들었으면 개인 혹은 회사냐는 대출주체의 논란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이 문제는 제재심에 상정된다. 오는 28일 제재심의위원회가 유력하다. 앞서 당국이 기관경고, 임원 제재, 일부 영업정지 등을 사전통지한 것을 감안하면 경중의 문제일 뿐 제재가 확실시된다.

이 경우 억울하더라도 증권사가 끝까지 법적다툼을 할 수도 없다. 당국과 법정소송에서 법리를 가리자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힘없고 빽없는 증권사가 종합검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당국에게 대들었다가 문제아로 찍혀 다른 신규 사업마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당국이 판단이 위법소지가 있어도 그 결정이 곧 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당국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오명을 씻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성해 기자 bad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