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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의 승부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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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의 승부 압승

[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의 경쟁에서 압승.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의 경쟁에서 압승.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경제학 박사] 코카콜라와 함께 전 세계 음료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펩시코의 총 사령탑은 인드라 누이다. 주주를 대표하는 최고의결기구의 의장과 실제로 회사경영을 꾸려가는 최고경영자(CEO)라는 두 중책을 동시에 맡고 있다. 펩시코 같은 초대형 거대 다국적 기업에서 이사회 의장과 CEO를 주인도 아닌 전문경영인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펩시코가 인드라 누이이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큰 것이다.

인드라 누이는 1955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인도 남부 마드라스가 그의 고향이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경제적으로는 그저 그런 대로 먹고사는 정도. 인도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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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의 경쟁에서 압승

인도의 카스트 신분상으로 하층민이다. 마드라스 크리스천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대학 신문에서 광고 매니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IIM이라고 부르는 인도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캘커타에 위치한 인도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이다. 누이는 MBA 과정에 들어가 금융과 마케팅을 주로 공부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메터 비어드셀(Metter Beardsell)이라는 인도 섬유회사에 잠시 일하다가 미국계 다국적기업인 존슨 앤 존슨 인도 현지법인으로 옮겼다. 여기서 여성 생리대 브랜드인 스테이프리(Stayfree)를 인도에 도입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미국산 생리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 악역을 맡은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미국의 한 잡지에서 예일대 MBA 과정 학생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했다가 합격통지를 받았다. 미국으로 보폭을 넓힌 것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인도 남부는 무척 보수적인 곳이다. 처녀 시절 외지여행 경험이 있는 여자와는 결혼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의 부모는 이 같은 주위의 눈총에 개의치 않고 딸의 미국유학을 성원했다. 인드라 누이는 고향마을에서 해외 유학을 떠난 최초의 여성이다.

예일대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생계비 마련을 위해 바텐더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해가 뜰 때까지 일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다. 결국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1980년 졸업과 동시에 보스턴 컨설팅에 스카우트됐다. 거기서 경험을 쌓은 후 1986년 모터롤라의 이사로 옮겼다. 2년 후인 1988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90년에는 스위스의 다국적 기술용역회사인 ABB 수석 부사장으로 또 스카우트됐다.

인드라 누이는 가는 곳마다 큰 업적을 남겼다. 기업의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른바 전략마케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즈음 인드라 누이는 전략 마케팅으로 새 돌파구를 찾으려는 수많은 거대기업으로부터 헤드헌터 대상 1호로 지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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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펩시가 누이에게 접촉해왔다. 당시 펩시는 코카콜라와의 연이은 경쟁에서 잇달아 무너져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완전히 펜시의 새로운 판을 짜기로 하고 누이에게 그 역할을 부탁해왔다. 누이는 그때 구조조정의 황제로 불리는 GE의 잭 웰치 회장으로부터도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있었다.

펩시 주주들의 간곡한 개편 의지에 감복하여 GE카드를 버리고 펩시 쪽을 선택했다. 인드라 누이가 당대 최고의 기업인 GE행을 거절한 것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1994년 누이는 펩시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는 회사의 판을 새로 짜는 작업에 나섰다. 인드라 누이는 우선 펩시의 주력제품을 콜라에서 스낵과 식품으로 바꾸었다. 콜라회사에서 콜라를 비주력으로 걷어낸다는 것은 일대 혁명이었다. 코카콜라라는 절대강자때문에 펩시가 콜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인드라 누이는 개편 이후 스낵과 식품에서 우선 1등으로 올라선 다음 그 힘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콜라도 살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한 전략 아래 1965년부터 펩시그룹에 들어와 있던 콘 칩과 포테이토 칩 등 스낵메이커인 프리도-레이(Frito-Ray)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또 오트밀과 게토레이 생산업체인 퀘이커를 전격 인수했다. 코카콜라의 최대주주인 오마하의 현인이자 투자의 달인인 워런 버핏이 인수협상을 하고 있는 도중에 끼어들어 버핏이 제시한 가격보다 20억달러나 낮은 금액으로 전격 인수해 버렸다. 이때부터 누이에게는 워런 버핏이 무서워하는 유일한 여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 경쟁에서 압승.
[글로벌 CEO] 펩시코 인드라 누이 …코카콜라 100년 아성 무너뜨린 철의 여인, 워런버핏과 경쟁에서 압승.


인드라 누이의 구상은 적중했다. 마침내 펩시가 매출액에서 코크를 앞질렀다. 시가총액에서도 코크를 앞섰다. 그 공로로 누이는 CEO로 승진했다.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국인이라는 한계, 또 여자라는 성차별 그리고 돈 없고 백 없는 한미한 하층 출신이라는 신분상 장벽을 모두 실력으로 뛰어넘은 인간 승리의 화신이다.


김대호 소장/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