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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금융제국 미국을 만든 세계 금융의 1인자… 뉴욕증시 다우지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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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금융제국 미국을 만든 세계 금융의 1인자… 뉴욕증시 다우지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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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금융제국 미국을 만든 금융의 1인자…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견인차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고 그 세상을 모간이 한 번 더 창조했다"

뉴욕증시 월가에 나도는 말이다. 그 만큼 JP모간체이스의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JP모간체이스은 미국 금융기관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세계에서 금융이 가장 강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그 금융 미국의 한 중심에 JP모간체이스가 있다.

JP모간체이스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도 더 지난 1799년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주역은 미국의 상원 의원에 이어 부통령에 까지 올랐던 ‘아론 버’(Aaron Burr)이다.

아론 버는 뉴욕의 수도건설 자금을 모으기 위해 맨해튼 은행을 설립했다.

그 맨해튼 은행이 JP모간체이스의 세개의 축 가운데 하나의 뿌리다.
맨해튼 은행은 1955년 체이스 은행과 합병했다. 합병후 이름은 체이스맨해튼 은행이다.

두 번째 뿌리는 케미컬은행이다.

케미컬은행은 미국의 화학업체 대표들이 연합하여 만든 은행이다. 케미컬 은행이라는 상호도 화학이라는 뜻의 영어 케미칼에서 나온 것이다. 케미컬 은행은 1824년 출범했다.

케미컬 은행은 1996년 체이스 맨해튼 은행과 흡수 합병했다.

JP모간체이스 세 번째 뿌리는 1838년 설립된 영국의 피바디 은행이다.

피바디은행을 설립한 피바디는 금융 가문으로 유명한 로스차일드가의 일원이다.

바로 이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JP모간체이스과 로스차일드 가문이 한 통속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스펜스 모간이 이 피바디를 1861년 인수했다. 스펜스 모간은 3년후인 1864년 피바디를 아들에게 상속했다.

그 때 상속을 받은 인물이 바로 모건그룹의 창업주로 불리는 JP모간이다.

JP모간은 피바디를 인수한후 그 상호를 JP모간으로 바꾸었다.

JP모간이 가장 역점을 둔것은 유럽의 자금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새로 뜨는 기회의 땅이었다. 골드러시에 이어 링컨 대통령이 동서대륙횡단 철도를 건립하기 시작하면서 붐이 일었다. 유럽의 자본가들은 기회의 땅 미국에 투자하고 싶어했다. 당시 유럽에는 미국시장에 대한 투자정보가 거의 없어 대서양 바다 건너 투자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준 것이 바로 JP모간이다. JP모간은 유럽의 자본을 들여다 대신 투자해주면서 고수익을 돌려주었다. JP모간 덕에 미국은 투자 재원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미국의 초기 철도와 철강 그리고 전신, 자동차 전화산업 발전에 JP모간 등이 크게 기여했다.

파나마 운하 건설자금도 JP가 모았다.

모간의 자금중재가 없었다면 미국의 산업화는 지금보다 훨씬 지체되었을 것이다.

JP모간 그 공로로 근대 산업의 아버지라고 까지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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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미국을 만든 신의 한 수…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견인차


모간이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뉴욕증시 월가의 평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 아들대인 잭 모간 대에 와서는 더 번성했다.

잭 모간은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터지자 영국과 프랑스를 도왔다. 미국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전시 공채를 팔아 그 돈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도운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이 주도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모간의 입지는 더둑 세졌다. 1차대전 이후 최고의 채권은행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유럽의 금융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29년 밀어닥친 미국의 대공황 때도 모간은 더 성장했다.

JP모간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대공황때 망해가는 기업들을 헐값에 마구 사들였다. 대공황이 거의 끝나가던 1930년 대 초 모간은 산하에 100겨개의 기업을 거느린 공룡그룹으로 성장했다. 그 당시 뉴욕증시 월가의 상장기업 자산 중 44%가 모간의 소유였다.

미국은 1933년 글래스 스티걸 (Glass-Steagle)법을 시행한다. 금융 독점을 금지한 법이다. 덩치가 너무 커진 모간을 겨냥한 법이었다.

글래스 스티걸 (Glass-Steagle)법 으로 모간은 쪼개졌다.

우선 증권이 분리됐다. 모건 스탠리가 그때 만들어진 JP모간의 증권사다. 모건 스탠리는 이후 소유권 이전으로 JP모간에서 떨어져 나갔으나 처음에는 JP모간의 가족이었다.

JP모간는 또 수많은 기업에 투자되어있던 지분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떨어져 나갔다. JP모간의 영향력은 약화됐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9년에 와서 금융독점 규제가 사라졌다.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독점법을 퇴장시킨 것이다.

그 이듬해인 2000년 모간과 체이스맨해튼이 통합했다.

오늘날 JP모간체이스란 회사 이름은 그때 생겨났다.

투자은행의 대명사였던 모간과 상업은행의 대표격이었던 두 은행의 합병은 미국 금융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글래스 스티걸 (Glass-Steagle)법 으로 1933년 이후 무려 67년 동안 서로 갈라져 있었던 투자은행과 상법은행이 하나로 다시 통합된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이 통합으로 모든 금융업을 취급하는 완벽한 종합금융회사로 새로 태어났다.

투자은행 분야인 기업투자, 자산운영, 기업금융과 상업은행 분야인 여수신, 소매금융, 신용카드 등 모두 6개 분야가 한 지붕 아래로 들어왔다.
[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위기때 더 빛나는 신의 한 수…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견인차이미지 확대보기
[기업연구] JP모간체이스, 위기때 더 빛나는 신의 한 수… 미국 뉴욕증시 다우지수 견인차


2007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더 성장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측하여 모기지 대출에서 미리 손을 뺐다.

서브프라임사태가 터지자 시티은행 등 유수의 은행들이 잇달아 파산신청을 했따.

그 와중에 모간은 오히려 부도위기의 경쟁사들을 싼값으로 사 모았다.

그 결과로 세계금융의 정상에 우뚝 섰다.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