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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나오기 전 콩깍지와 볏짚 태운 재로 빨래…옛날 몸 씻는 세제 재료로 쌀겨, 쌀뜨물, 녹두, 창포, 콩가루, 밀가루 등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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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나오기 전 콩깍지와 볏짚 태운 재로 빨래…옛날 몸 씻는 세제 재료로 쌀겨, 쌀뜨물, 녹두, 창포, 콩가루, 밀가루 등 사용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비누의 상식

비누를 뜻하는 영어단어 'SOAP'는 기원전 그리스의 '사포' 산에서 유래됐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비누를 뜻하는 영어단어 'SOAP'는 기원전 그리스의 '사포' 산에서 유래됐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2차 세계대전이 한참 일 무렵,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 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잘 알려진 가스실의 유태인 대량 학살이었지요. 병든 사람, 어린이, 노인, 정치범을 대상으로 샤워를 시켜준다며 독가스를 살포하여 35만 명 이상이 질식사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검’이 온전한 주검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나치들은 이 시체들을 1차 가공 생산물로 여기며 시체에서 머리털을 모으고, 금이빨을 뽑았으며, 일부는 생체실험 대상으로 냉동고에 넣었습니다. 2차 과정을 거친 후 훼손된 시체들은 소각되기 전에 또 다시 몸에 있는 기름을 빼 내는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사람 몸에서 나온 기름으로 화약의 주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추출하는데, 그 중 일부는 비누를 만드는 원료로 썼답니다. 당시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라면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누를 영어로 ‘SOAP’이라 부릅니다. 이 말의 유래는 기원전 그리스의 ‘사포’ 산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사포 산에는 신의 제단이 있었고 이곳에서 수시로 제사를 지냈으며 제물로는 양을 구워 바쳤습니다. 그런데 제사용 양을 구울 때 마다 양들의 몸 밖으로 기름이 나왔고, 이 기름이 타고 남은 재와 섞여 고이거나 땅 밑에 스미었습니다. 이것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 언덕 아래 강과 합치게 되는데, 이 강가에서 빨래를 하면 다른 곳 보다 때가 잘 빠졌다고 합니다. 금방 소문이 나서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사포의 강 주변으로 몰려 들었고, 이 후 ‘사포’는 때를 벗겨내는 대명사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이 사포가 영어 표기로는 ‘SOAP’ 이고, 프랑스어로는 ‘샤봉'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양의 기름과 나무재가 합쳐지면 때가 잘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비누의 원리인데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물에다가 기름을 떨어뜨리면 서로 표면 장력을 만들어 합치기를 거부합니다. 여기에 기름과 알칼리성 나트륨(가성소다, 잿물)이 합쳐져 생성된 ‘지방산’을 넣으면 표면장력이 제거되고 물과 기름은 합쳐집니다. 이것을 ‘계면활성기능’이라 말하는데, 지방산에 의해 분해된 ‘때’는 물로 손쉽게 제거되어 깨끗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제의 원리를 이용한 곳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더 오래전 이집트에서도 나타났고, 우리나라 선조들도 기름은 섞지 않았지만 콩 깍지나 볏짚을 태워 타고 남은 재를 물과 혼합하여 ‘잿물’을 만들어 빨래에 이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기름과 재가 세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마르세유 지역에서 식물성 지방산 비누인 올리브 비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비누를 우리 몸을 씻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17세기 프랑스 마르세유 지역에서 식물성 지방산 비누인 올리브 비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비누를 우리 몸을 씻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17세기경 프랑스 마르세유 지역에서 비누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식물성 지방산 비누가 등장한 것이지요. 종래까지 양이나 소에서 추출한 동물성 기름비누는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냄새도 고약했지만 빨래 차원에서 감내하며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다 마르세유 올리브 산지에서 처음으로 올리브기름 비누를 탄생 시켰는데, 색도 희고 향기까지 배어 있어서 유럽사회에서는 ‘꿈의 비누’로 칭송되었습니다. 당시 정부(루이14세)는 이 비누 제조의 보호를 위해 칙령까지 선포하였다고 합니다. 식물성 비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몸의 청결제로 비누를 사용하기 시작한 점이지요. 그동안 머리염색이나 피부치료를 위해 극히 제한적으로 동물성비누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대다수는 천이나 옷을 빨기 위해 비누를 사용했으며, 올리브비누가 나오기 전까지 비누로 몸을 씻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1791년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스 르비앙’은 잿물이 아닌 일반 소금에서 가성소다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공정으로 많은 양질의 소다 재를 얻을 수 있었으며 대규모 상업적 비누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더욱이 1800년대에 미국에 전기가 상용화 되어 ‘플록 앤 갬블(P&G)’사는 대량생산을 통해 다양하고 질 좋은 비누를 선보이게 됩니다.

'비누'라는 말은 한자어인 비루(飛陋)에서 변형된 말인데, 비루의 뜻은 '더러움을 없앤다'입니다. 이 말은 근세기 중국에 미국산 가성소다비누가 소개되면서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비누를 특히 ‘양잿물 비루’라고 불렀습니다. 양잿물 비루는 강한 세척력으로 인기가 많았지만, 양잿물 자체가 독성이 강하여 소량만 마셔도 치명상을 당하는 위험물질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양잿물 마시고 자살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우리 속담에 ‘비루먹일 놈’ 즉 ‘양잿물 먹여 죽일 놈’도 그 위험성을 내포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비누가 들어오기 전 조상들은 몸을 씻는 세제 재료로 쌀겨, 쌀뜨물, 녹두, 창포, 콩가루, 밀가루 등을 사용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우리나라에 비누가 들어오기 전 조상들은 몸을 씻는 세제 재료로 쌀겨, 쌀뜨물, 녹두, 창포, 콩가루, 밀가루 등을 사용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우리나라에 비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빨래용 소재로 ‘잿물’이 통용되었고, 재밌는 것은 잿물대신 오줌도 세탁에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오줌도 알칼리성이라 세척작용을 하는데, 이런 사례는 기원전 고대 로마의 세탁업자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옛날 몸 씻는 세제 재료는 쌀겨, 쌀뜨물, 녹두, 창포, 콩가루, 밀가루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맷돌에 곱게 갈아 몸을 씻을 때 사용하면, 가루들 사이에 미세한 틈이 지방성분을 흡착시키고 계면활성 성분도 다량 들어 있어서 때가 잘 벗겨졌습니다. ‘방앗간 집 딸이 피부가 곱다’라는 말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겠지요.

우리나라에 처음 서양비누가 소개된 것은 기록상 프랑스 신부 리델이 가져온 ‘샤봉’이란 비누라 하는데 분명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양비누가 빨래나 몸 씻는 데 최고라고 소문이 나면서 너도나도 비누를 갖고 싶어 하자, 일본인 ‘오다’는 재빠르게 인천 송월동에 자본금 30만원의 합명회사인 ‘애경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비누생산에 들어갑니다. 이때가 1912년이었습니다.

애경사에서 생산된 화장비누와 빨래 비누는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으며 수도권이 전체 생산의 60%, 대전, 대구 20%, 군산·목포 15%, 기타 지역 5%를 차지하며 최고의 호황을 누렸습니다. 애경비누의 주원료는 소의 지방과 양잿물이었으며 소의 지방(우지)은 중국의 청도, 대련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 공급을 받았습니다.

한편 애경비누와 다르게 민가 또는 가내수공업으로 ‘석감’이라는 비누가 만들어 지게 되는데 ‘석감’은 양잿물에 풀 즙을 넣고 밀가루로 반죽한 것으로, 한국 사람이 만든 최초의 비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냄새가 고약하고 보관도 용이하지 못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해방 후 일본인 회사 ‘애경사’는 한국사람 ‘채용인’이 인수하여 종업원 50명, 자본금 오천만환의 애경유지공업(주)를 창립합니다.

회사와 상품명은 수십 년간 한국인에게 친근했던 ‘애경’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런 전략이 들어맞아 애경유지도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1958년에는 애경유지의 대표 브랜드인 ‘미향비누’가 한 달에 100만개씩이나 팔렸다고 하며, 인천과 서울 사이를 다니는 차량 대부분은 ‘애경유지’ 트럭 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애경 유지는 오늘날 애경그룹으로 성장했고, 1947년에 출범한 락희화학공업(LG생활건강전신)과 현재 국내의 생활용품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고 있습니다.

잿물에서 양잿물, 빨래 비누 그리고 화장비누, 분말 세제, 최근의 천연오일 비누까지…. 비누도 역사의 수레바퀴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진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