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향기] 복사꽃과 무릉도원

기사입력 : 2018-02-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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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밤이 길수록 별이 빛나듯 겨울 한파가 매울수록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어쩌면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생각해 낸 것도 팍팍한 삶과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상향으로 번역되는 유토피아(utopia)는 세상에 없는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으로 빚은 이상향이 곧 유토피아인 셈이다.

동양의 대표적인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무릉도원’은 말 그대로 복사꽃이 만발한 동산으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 어느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가다가 계곡물에 복사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이 궁금하여 배를 버리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고 그 동굴에서 빛이 새어나와 그 안으로 들어가자 복사꽃이 흐드러진 별천지가 있었다는 게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에 관한 스토리다. 무릉도원은 속세와 떨어져 자연 안에 있으면서 저마다 자유롭게 생업에 종사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 이상향에 등장하는 꽃이 매혹적인 장미나 화려한 모란이 아닌 복사꽃이란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복숭아꽃은 장미과에 속하는 복사나무의 꽃이다. 복사나무는 키가 6m 정도이며, 꽃의 색깔은 연홍색이다. 4~5월경에 꽃이 피고 과실의 수확 시기는 7~9월이다. 잎보다 먼저 연홍색의 꽃이 1~2개씩 가지 끝 짧은 꽃줄기 끝에 달리는데, 꽃잎은 5개로 원형이고 꽃받침 잎은 난형이다.

복사꽃은 앵두꽃, 살구꽃과 더불어 인가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봄꽃 중의 하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우리의 귀에 익은 동요 ‘고향의 봄’에도 복사꽃이 제일 먼저 나온다. 널리 사랑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꽃이면서 우리 가까이에 있는 꽃이란 말도 된다. 어쩌면 그런 친숙함이 자연스럽게 복사꽃을 이상향의 꽃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복숭아나무는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의 맛도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던 과실나무다.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으며, 꽃과 열매가 선경(仙境)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된다.

안평대군의 이상세계가 담긴 ‘몽유도원도’에도 도화가 나오고, 궁중을 장식했던 ‘십장생도’에도 도화가 나온다. 선비들이 모여 꽃놀이를 하는 그림에도 어김없이 복사꽃이 등장한다.

요즘은 봄이면 어디서나 꽃 터널을 이루며 화르르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에 홀려 너도 나도 다투어 꽃구경을 나서지만 원래 우리 전통의 꽃놀이의 대상은 벚꽃이 아닌 복사꽃이었다.

겸재 정선의 ‘필운대 상춘’이란 그림 속엔 선조 때 재상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있는 인왕산 중턱의 필운대에서 바라본 복사꽃 만발한 서울풍경이 무릉도원처럼 펼쳐져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꽃빛 또한 화려하여 옛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복사꽃 아래에서 봄날의 흥취를 즐겼던 것이다.

흔히 꽃을 두고 산중의 달력이라고 한다. 복사꽃이 피어나면 천지간엔 이미 봄빛으로 가득차서 봄이 무르익는 시기다. 누구라도 복사꽃 분홍 물결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과원을 만나면 저절로 탄성을 터뜨리게 마련이다. 복사꽃을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리하여 마음이 달떠서 까닭 없는 설렘으로 얼굴 붉힌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화는 별천지의 꽃이 아니라 요부의 매혹적인 눈흘김처럼 뿌리칠 수 없는 색기(色氣) 넘치는 꽃이란 걸 알 것이다. 아무리 목석같은 사내라도 그 요염한 분홍 꽃빛에 한 번 홀리고 나면 마음이 들떠서 자신도 모르게 그 빛에 기대어 봄의 잔치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진다. 이제 봄을 마음 안에 세운다는 입춘도 지났으니 곧 봄이 올 것이다.

이태백은 복사꽃 살구꽃이 흐드러진 봄밤에 벗들과 잔치를 열고 ‘봄은 꽃 안개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화려하게 수놓은 무늬로 나에게 보여주네.’라고 했다. 새봄엔 잠시라도 팍팍한 현실을 떠나 복사꽃 피는 마을로 꽃놀이를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노정용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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