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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후배보다 못한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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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후배보다 못한 선배

2017년을 보내기 전의 고백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기사 때문에 본사에서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제보자가 누군지 매장 사장들을 대상으로 수소문하고 있어요. 어떡하죠? 들키면 계약 연장도 안 되고 낙인찍히게 돼요. 기사 좀 삭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다름 아닌 부서 후배의 사연이다. 올해 중순쯤 겪은 일이다.

후배는 “동대문 유통상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취재원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는데, 그게 탈이 났다”며 “본사에서 언론에 제보한 사람이 누군지 색출하고 있다”는 취재원의 말을 보고했다. 취재원은 후배에게 문자로 “지금 기사 때문에 생사가 걸려 있는데, 도움은 못줄망정 전화를 피하냐”고 따지기도 했다. 화장실 가던 사이 잠깐 전화를 못 받은 것뿐인데, 돌아온 말들은 험했다. 험한 문자는 당시의 취재원의 상황을 방증한다.
후배는 취재 당시 취재원에게 익명으로 기사가 나간다고 몇 번을 고지했고, 취재원은 얼마든지 기사가 나가도 된다고 약속했다. 데스킹 당시 이런 사항을 확인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기사가 나간 후 상황은 변했다. 자사 몰(Mall)내 입점 업체들에게 갑(甲)질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기업은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갑질을 당한 이가 몇 명 안 됐기 때문에 금방 제보자를 알수 있었다. 당시는 공정위가 갑질한 대기업을 수시로 압수수색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당 기업은 광고국을 통해 기사 삭제 제안을 하기도 했다. 발품 팔아 공들인 기사를 내릴 순 없었다.

복병은 취재원이었다. 이례적으로 취재원이 기사를 내려달라고 했다. 결국 대기업이 계약 연장을 약점 삼아 매장 주인에게 갑질을 한 것이지만 후속기사도 못쓰고 어쩔 수 없이 기사를 내려야 했다. 취재원은 “후속기사를 낼 경우 영원히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며 “매장을 빼게 되면 제대로 장사도 못해보고 투자금만 날린다”고 하소연했다.

다 늦은 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온 후배는 허탈해 했다. 기사를 내려서 허탈한 게 아니라, 대기업의 연속되는 갑질을 그냥 보고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후배는 기업의 못된 짓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느라 낮에 보고하지 않고, 밤늦게 보고를 했다. 후배만도 못했다. 취재원 한 명의 피해는 줄였지만, 그 기업은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하청업체와 매장 주인들에게 갑질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 취재원을 설득했더라면 아쉬움만 남는다. 후배보다 못한 선배임을 자인한다. 2018년에 반복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ckb@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