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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골, 군인에서 정치가로…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발자취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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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골, 군인에서 정치가로…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발자취 남겨

샤를 드 골//출처=독일 연방 기록보관소, 에곤 슈타이너
샤를 드 골//출처=독일 연방 기록보관소, 에곤 슈타이너
[글로벌이코노믹 유병철 기자] 샤를 드 골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샤를 드 골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압제에서 프랑스를 해방시켰고, 전후 프랑스의 재건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알제리와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결정한 것도 샤를 드 골이다.
드 골의 이름은 프랑스 여기저기에 깊이 남겨져 있다. 프랑스 해군이 1989년에 건조해 2001년에 취역한 샤를 드 골 급은 중형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있다. 또한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은 프랑스 최대 규모의 공항이다.

부정적인 평가도 상존한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립시켰지만 각국 독재정권과 은밀한 결탁 관계를 바탕으로 식민 패권을 유지했다.

일명 '프랑사프리크'(Francafrique)라 불리는 프랑스와 아프리카 독재정권과의 관계 정책을 시작한 것은 샤를 드 골이다. 결과적으로 옛 식민지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를 독립 후에도 예속 시켰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수세에 몰릴때마다 재신임 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 독재를 펼쳤다는 평가도 받는다.

샤를 드 골은 프랑스 북부의 도시 릴에서 1890년 태어났다. 1909년 생 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이 됐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나 부상을 입고 32개월간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1940년 2차 대전에서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지 준장으로 진급해 전쟁을 치뤘다.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프랑스가 항복을 선언하지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가 세운 망명 정부가 자유 프랑스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 후 드 골은 레지스탕스와 시민의 도움을 받아 파리를 해방했다. 1945년 내각 수반으로 임명됐으나 1946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1당으로 올라서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프랑스가 수에즈 전쟁, 알제리 전쟁 등을 잇따라 치른 뒤 사회당 정권 붕괴 위기에 몰린 1958년, 드골은 프랑스의 알제리를 주장하며 나섰다. 의회해산, 헌법개정, 임시정부 수반자리를 쟁취하며 드 골은 대통령이 돼 제 5공화국을 수립했다.

드 골은 정권장악 후 알제리 독립을 승인했다. 이후 전면적인 식민지 독립을 승인해 1960년에는 모든 아프리카 식민지가 독립했다. 드 골은 프랑스 연합이라는 국제기구를 창설하기도 했다.

1967년 드 골계의 우파가 부진을 나타내고, 이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이 4.4%로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968년 5월 전후세대와 노동자들이 드골 체제의 권위주위에 반발하는 68운동을 벌였다. 6월 열린 총선에서 드골은 46%의 득표를 얻었지만 이듬해 4월 지방행정과 상원의회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칩거하던 드 골은 1970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회고록 1권 출판 직후였다.

한편 이날 샤를 드 골이 관심사로 떠오른 건 MBC 서프라이즈에서 그의 둘째딸이 다운증후군에 걸려 있던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샤를 드 골의 둘째딸인 안느는 생전 다운증후군을 앓았다. 그는 둘째딸을 평생 아꼈다. 딸이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느끼지 않도록 주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유병철 기자 ybsteel@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