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4일과 1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사업 선정작인 배준용(서울 댄스 씨어터, Seoul Dance Theatre 예술감독) 안무의 『팝 아트 피나』(Pop Art Pina)가 공연되었다. 독일의 저명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를 기리는 작업이다. ‘Pina!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다!’라는 명제의 무용은 팝아트처럼 유머와 패러디를 깔고 ‘피나랜드’라는 가상현실을 보여준다.
열린 형식으로 펼쳐진 춤은 관객들이 입장하자마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연기자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상 모두가 춤이고 드라마임을 주지시킨다. 현대무용가 배준용의 생각, ‘피나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환상 그 자체이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생각, ‘돈을 버는 예술 비즈니스야말로 최상의 예술이다.’ 준용, 피나, 앤디는 시대를 넘어 상상의 공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담소한다. 현대인에게 슬픔과 외로움은 필수 통과과목이다.
몸에 대한 저급한 상품화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몸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무용은 격조와 품위로 인한 한계로 고도의 상상력과 기교를 필요를 한다. 『팝 아트 피나』는 무용 작품의 상품화, 그 대중성과 산업성에 관한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예술성 몰입의 존심 유지냐 상업성 추구의 타협이냐 사이에서 순수무용을 잠식하고 있는 시대의 우울한 상품성 추구는 무용예술가들에게 치명적 좌절감을 안겨준다.
피나는 탄츠 테아터(Tanz Theater)라는 무용형식으로 통섭의 가치를 실현했다. 그녀의 거대한 소통 지향의 춤은 지구촌을 움직였고, 인간의 내밀한 문제점들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고 농담처럼 해결해 나갔다. 이 점을 간파한 안무가 배준용은 피나의 무용 작품은 ‘팝아트 예술의 상품’이라는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백남준처럼 ‘예술이지만 예술이 아니게’ 보이게 하고 ‘상품이지만 상품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팝 아트 피나』는 피나의 무용예술 작품이 K-pop이나 디즈니 만화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가상현실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런 세상이 나를 포함한 무용예술가들에게도 온다면…’, 배준용의 상상은 날개를 단다. 설정: 피나가 죽은 지 백이십년이 지난 어느 날, 관객은 Pop-Pina(=피나 바우쉬 무용의 대중화 프로젝트)의 보급에 선도적 역할을 해온 한 단체의 기념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대중들이 즐겨 마시는 콜라, 연예인 화보, 미키마우스 캐릭터 같은 이미지가 미술관에서 미술작품으로 소개된 사건이 '팝 아트'의 시초였듯이, 배준용은 ‘만약에’의 전제로 ‘피나는 대중들의 삶 안의 하나의 현상이나 경향이 되어있다.’ 라는 허구 상황을 보여주면서 현대 무용계의 상징적 정점 피나 바우쉬 자체를 상품(물질)로 바라보는 지금 이 시대의 문화예술의 경향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피나의 작업은 무용계에서는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대중문화계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간극’이 무용계의 현실이다. 안무가 배준용은 Pop PINA Land의 상품성에 대한 가상현실을 만들어 이 간극에 대해 생각하고 느낌을 공유하고자 한다. 상품과 물질을 우선시 하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만 추구하는 가상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실험적 판타지 무용을 선보인다.
피나의 『카페 뮐러』, 『카네이션』등에 대한 조형, 영화 『피나, Pina』의 영상 등을 차용한 무대, 김민기 작곡, 이동원의 ‘가을편지’를 간음악(間音樂)으로 사용한 『팝 아트 피나』는 운명적 장르 춤을 자신의 예술로 선택한 자들에게 보내는 힐링 춤이다. 이 작품은 느릿하게 세월을 관조하며 춤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갖자는 배준용식 메시지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춤을 사랑하다보면 춤은 수행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출연 김유정, 백주미, 이혜상, 황찬용, 신은정, 김희준, 배준용, 홍진일(배우)
글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사진제공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