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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트랜스 휴먼, 한국에선 이미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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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트랜스 휴먼, 한국에선 이미 오래된 미래

산업부 신진섭 기자
산업부 신진섭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기계를 통해 강력한 힘을 얻어 신과 대등한 '트랜스 휴먼'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반만 맞았다.

분명 인간의 능력은 기계와 결합하면서 눈부시게 진보중이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업무량을 한국인들은 기계의 도움을 빌어 뚝딱 처리하곤 한다. 타자속도 400타면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나고, 전 국민 500타의 시대가 열렸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동시에 노트북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SF적 장면이 한국에선 매일 반복된다. 트랜스 휴먼은 이미 여기 와 있다.
'내가 직장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기계가 됐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2017년 나왔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거다. 한국에서 인간은 기계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간단한 실험 하나면 증명된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딱 한나절만 스마트폰을 직장인과 분리시켜 본다. ‘니가 사람이냐, 제 정신이냐’는 소리가 분명 누군가에게서 목청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기계 없이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액체금속 인간형 로봇 T-1000을 보고 느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T-1000은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서. 2017년 한국의 T-1000은 바로 카카오톡, 라인 등 메신저다. 기계와 분리되는 시간을 용인할 수 없는 듯이 카톡은 휴일에도 어김없이 직장인을 소환해 노트북 앞에 앉힌다.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인간성은 메말라간다.

유발 하라리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됐다. 신은 능력과 더불어 자유를 갖춘 존재다. 주말에 울리는 카톡에 심장마비 직전까지 몰리는 한국 직장인들과 신은 꽤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