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전 총리의 연설은 두 개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배탈이 나면 부드러운 죽보다 거친 평상식을 먹어라” “어떤 음식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난다”. 다시 말하면 입에 넣기만 하면 씹지 않아도 꼴딱꼴딱 넘어가는 죽보다는 잘근잘근 오래 씹어야 삼켜지는 나물 같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거친 음식을 곤죽이 될 때까지 오래 씹으면 침샘 분비가 활발해지게 되고, 분비된 침에는 소화효소뿐만 아니라 면역물질도 포함돼 있어 많이 씹으면 씹을수록 몸의 면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란다. 아프면 으레 죽을 찾던 나에게는 그의 제안이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듣고 보니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홍자성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 바닥난 국고 등 이미 멸망의 기운으로 쇠락해가는 명나라 말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통찰을 채근을 씹는 자세에 비유해 어록으로 남겼다. 소박하고 깊은 맛을 지닌 나물뿌리는 입안에 거칠기 때문에, 신분이 높아져 윤기 흐르고 부드러운 음식 맛에 익숙해지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모르고 말이다.
사실 행사 주최 측인 K대학은 이미 창립된 지 올해로 107년이 되는 대학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지 독자들은 궁금해질 것이다. 그 이유인 즉, 이 대학이 창립 100년을 맞이할 즈음에 세계금융을 뒤흔들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였고, 그 때문에 K대학이 미래발전자금의 안전한 운용을 위해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 Inc.)에 투자했던 52억엔(한화로 약 520억 원)이 회수 불능 상태가 되었으니 아마 당시로서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염두에 둘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K대학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에 와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갖게 된 것은 존폐의 기로에 섰던 대학이 7년여의 뼈를 깎는 폭풍개혁의 단행으로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병원 외에 새로운 대학병원을 신축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쉬운 길로 돌아가기 보다는 정면 승부로 위기를 돌파한 이 대학은 이러한 쾌거를 대내외에 널리 공표함과 동시에 전쟁을 같이 치른 교직원 전우들과 대학의 부활을 자축하고자 때늦은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어떤 음식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난다”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축사 때문이었을까. 그 날 축하연에서의 식사 시간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여름날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겨울날의 파베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안락함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안락함은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부러라도 조금은 소박하고 불편하게 살되, 비루하거나 천박해지지 말기를” 당부하는 ‘채근담’의 교훈을.
신현정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