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삶과 죽음의 공간이 공존한 청동기시대의 마을 구조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96)]

기사입력 : 2017-06-14 08:26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center
송국리유적 원형집자리

부여 송국리 유적(扶餘 松菊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1976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토기와 달라 송국리식 토기라 불린다.


김경상 사진작가 김경상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오늘의 핫 뉴스

주요뉴스

포토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