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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옥기 문양이 상나라 청동제기 문양으로 이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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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옥기 문양이 상나라 청동제기 문양으로 이어지는 이유?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93)]

중국 제남장청소둔에서 출토된 상나라 청동네발솥, 산동박물관
중국 제남장청소둔에서 출토된 상나라 청동네발솥, 산동박물관
하·상·주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다. 지금의 개념대로라면 동이족이 한족(漢族)과 처절한 중원쟁탈전을 벌인 끝에 하나라를 무찌르고 550년 가까이 천하를 통일했으니 그것이 바로 상나라다.

중국 대륙에서 상나라, 일명 은나라로 불리는 역사적 거대한 성터 유적과 순장 인골 그리고 여러 찬란한 청동기 유물과 우리가 말하는 일명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자가 2만4794점이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경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 도대체 이들 정치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유명한 안양 인쉬(殷墟) 유적 바로 은허유적 발굴을 총지휘했던 푸쓰녠(부사년·傅斯年)은 일찍이 “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상이 망하자 동북으로 갔다”고 단정했다. 중국 학계도 이런 쑤빙치와 푸쓰녠의 관점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1970년 이후 본격적인 만리장성 넘어 동북방의 만주 대릉하지역에서 홍산문명의 거대 제단과 옥기 유물과 이후 고조선 건국시기의 고구려 치의원성 석성들과 이후 비파형 동검들이 잇달아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에 중국학자 쑤빙치가 “하나라 시대에 이미 중국 동북방 발해 연안에는 하나라를 방불케 하는 강력한 방국(方國), 즉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단언하며 이 정치 세력 중 일부가 남하하여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세우게 되며 천하를 제패하다 다시 망하면서 대릉하 지역으로 흘러들어와서 고조선 중후기의 비파형 동검 일명 남산근 유적을 꽃피우게 된다.

상나라의 유적과 유물에는 서쪽 내륙의 화한족과는 다른 문명인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들이 담겨 있다.

“인쉬 유적에서는 상나라 귀족들의 묘가 발견되었는데, 발굴된 대다수의 시신들이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인골들의 정수리를 검토해보니 북아시아와 동아시아인이 서로 혼합된 형태가 나타난다. 이것은 황허 중하류의 토착세력, 즉 한족(漢族)의 특징과 판이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쉬(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들을 분석한 인골전문가인 판지펑(반기풍·潘其風)의 주장이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로 지석묘, 석관묘, 비파형동검과 미송리식토기가 있는데 BC.2000년까지 올라가며 요녕지역이 중심지이다.

비파형동검은 요녕과 요동반도, 그리고 한반도에서 발견되는데 다뉴세문경이 함께 출토되므로 제의적 유물이고 화하족의 앙소문화와 구분되는 청동기로 비파형동검이 발견되는 지역은 고조선의 영토라는 증거다.
지석묘(고인돌)는 대륙의 요녕, 길림, 산동 그리고 한반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절강성에서 50기가 발견되었는데 절강지역도 고조선의 영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석관묘는 소주산유적에서 발견되는데 비파형동검도 함께 출토되며 형태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는데 전기형태는 요동에서 발견되고 후기형태는 요서지역에서 발견된다.

미송리식 토기는 한반도와 만주, 요녕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반도의 대동강에서 발견되는 팽이형토기가 산동반도의 대문구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김경상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