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바람이 불어오는 곳…"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공유
0

[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바람이 불어오는 곳…"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인사동에 가면 특별한 주점 하나가 있다. 하루 종일 스피커에서 김광석 노래만 흘러나오는 곳. 낙원상가 근처에서 1차를 마치고 김광석의 음색이 그리워 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그곳을 찾았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평일 늦은 밤, 불 꺼진 인사동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때 묻은 모텔 조명이 머리 위에 내걸린 비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걷다보면 은은하게 들려오는 노래. 골목 끝에서 좌회전 하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에 도착한다. 인사동 특유의 예스러운 인테리어에 손님들의 낙서와 명함이 벽면과 테이블 유리 밑을 노래 가사처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정겨운 술집.
지인들이 방문했는지 합석해 있던 주인 내외가 일행을 반겨주었다. 직장 동료들로 보이는 여성 몇 명이 다른 테이블에서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감자전을 안주 삼아 찬 맥주를 마셨다.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 안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비집고 들어서자 세상은 다시 따뜻해졌고, 가볍게 마시자던 술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 탁자 위에 빈병이 되어 쌓여갔다.

시간은 늘어지고 늘어진 시간 위로 추억이 내려앉기 시작할 때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주인장이 허락하고 손님들이 호응해 준 덕에 ‘부치지 않은 편지’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공교롭게 생일을 맞은 일행 중 한 명을 위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함께 불렀다. 센스 넘치는 주인이 내온 기타를 몇 년 만에 들고 굳은 손가락 놀림으로 줄을 튕겼다. 사람들의 환호성. 조용해진 지 오래인 스피커 옆 초롱불처럼 은은해진 조명 아래에서 모두의 흥이 타올랐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뜨겁게 합창했고, 뜨거운 가슴마다 ‘그루터기’의 넘치는 사랑을 토해냈다. 맘껏 사랑하며 정의롭게 살고 싶었던 젊은 날의 열정이 되살아오는 듯 밤은 붉게 익어갔다. 썩어빠진 자들은 써 본 적 없는 ‘이등병의 편지’를 떠올렸고,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죽어서 사람들의 가슴 위에 날마다 별로 뜬다. 김광석이 그렇다. 그가 살아서 부른 노래는 죽어서 모두의 삶을 위로하는 빛이 되었다.

별은 가장 어두운 하늘을 골라 자리 잡는다. 별은 짙은 어둠 그 너머에서 반짝이며 사람들을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런 별빛이기에 사람들은 아무나 가슴 속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 인공위성의 불빛에 현혹되지만 끝내 밤하늘을 건너오는 진짜 별빛을 찾아내고야 만다.

김광석,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다. 새로운 시대의 문틈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우리는 그곳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야 한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