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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식의 항공이야기] 한국 우주로켓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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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식의 항공이야기] 한국 우주로켓의 꿈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완전히 폐허 상태였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이 땅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100년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복구수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1958년에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 로켓 연구 조직을 신설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국방과학기술 연구소는 지금의 국방과학연구소 ADD가 된다.
1959년 7월 27일 국산 로켓 발사시험이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진행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로켓 발사시험이었다. 이날 시험에서 국방과학연구소가 제작한 1, 2, 3단 로켓이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발사 시험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발사 시험

북한은 1998년 미사일을 개조한 장거리로켓 대포동 1호를 시작으로 2006년 대포동 2호와 2009년 은하 2호를 발사했다. 이어 2012년에는 은하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핵개발과 우주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현재 북한의 로켓기술은 한국보다 2~4년 정도 앞서고 있는 말도 있다. 북한 로켓개발에 구소련 과학자를 포함해서 1만 명 정도의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1000명이 안 된다고 한다.

한국은 정부주도의 사업으로 2003년 나로호 개발에 착수하였다. 100㎏급의 과학기술위성 2호를 지구 고도 300~1500㎞에 진입시킬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위성발사체로서 1단 액체엔진과 2단 고체 킥모터로 이루어진 2단형 발사체이다. 1단 로켓은 러시아가 개발하고 상단 로켓은 국내 기술로 개발하였다.

2012년 10월과 11월에 있었던 두 차례의 3차 발사 시도는 연기되었으나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 나로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나로호 발사 성공
나로호 발사 성공
나로호의 실패와 성공은 한국에게 여러 가지 문제점과 숙제를 남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로켓 엔진 개발이다. 한국형 발사체(KSLV-2)의 엔진 시험 모델인 2단형 발사체를 발사하는 2017년 말까지 국내에서 이뤄지는 로켓 발사가 없다.

1959년에 시작된 한국의 로켓발사시험 현장인 고잔동 인근에는 현재 한화그룹의 모태인 한국화약 공장이 있다. 지난해에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을 매입하여 한화테크윈을 출범했다. 최근 한화테크윈은 한국형발사체(KSLV-Ⅱ) 초도 엔진 출하 기념식을 열고 75톤 액체로켓엔진 1대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납품했다.

참고로 한국형발사체는 총 3단으로 구성되며 1단에는 75톤 엔진 4기, 2단에는 75톤 1기, 3단에는 7톤 엔진 1기가 각각 들어간다. 지난번에 발사된 나로호의 1단에는 러시아의 170톤급 액체엔진, 2단에는 7톤급 고체엔진이 탑재되었다.

한국형발사체 75톤급 액체로켓 엔진(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75톤급 액체로켓 엔진(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개발의 핵심은 로켓엔진이다. 어느 나라도 로켓엔진 기술을 팔지 않는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은 독일의 로켓기술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구소련이 망할 때 한국은 로켓엔진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놓쳤다.

한국이 꿈꾸는 항공우주강국으로의 도약에는 장애요소가 하나 있다. 일부 정치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이 과거 민간 우주인 뽑기(고산‧이소연) 같은 이벤트성 성과 과시 등으로 많은 예산을 낭비하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게 그것이다.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에는 지금도 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묵묵히 노력하며 항공우주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우리는 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불가능한 것에 도전해야 한다(You have to try the impossible to achieve the possible)’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조형식 PLM지식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