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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생생인터뷰]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한 이영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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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생생인터뷰]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한 이영칠 씨

"예술 아는 기업이 차별화된 홍보한다"

한국 출신의 유명 음악인 가운데 성악가나 피아노, 바이올린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많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유럽 음악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한국인 지휘자가 있다. 바로 이영칠 지휘자다. 실력 하나만으로 유럽 무대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그는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후원하는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 '작곡가의 나라' 러시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한국인 지휘자의 진가를 드높이고 있는 이영칠 지휘자를 글로벌이코노믹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러시아내셔널필하모니오케스트라를지휘한이영칠지휘자
▲러시아내셔널필하모니오케스트라를지휘한이영칠지휘자
-예술가를 예술가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데, 예술가를 바라보면서 사회적 입장을 고려하거나 그 사람의 조건을 따지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반인에게 어떤 예술적 가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유명한 사람을 생각하고 얘기할 때 그 기준이 매개체에 의한 자료를 증거삼아 말하는 것이다. 또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까 한국 문화와 관련된 사람은 한국에만 국한된 문화를 본다. 그것이 문제다.

이렇게 문화에 국한되면 미국이 음악의 종주국이며 중심이라 착각하기 쉽다. 우리가 미국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음악의 종주국은 미국이 아니다.

우리나라 예술은 민간인의 것이 없다. 전부 국가의 것이다. '도쿄 필하모니'하면 도쿄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시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베를린 필하모니도 정부에서 15%의 예산만 지원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실력과 음악성으로 티켓을 판매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 공무원이 오케스트라를 관리하다 보니까 음악적 가치보다는 인맥관계 등으로 판단한다. 이러다보면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본인이 지휘자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세계적인 지휘자라는 표현은 적혀있지 않다. 인터뷰를 할 때 그러한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세계적 지휘자라는 것은 세계에서 10위 안에 들어야 들을 수 있는 호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다만 동양 또는 한국에서 최초란 말은 괜찮다.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얼마나 활동을 했는가, 하는 기준으로 봐야한다. 한국 매체에 많이 나왔다고 해서 세계적인 지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계적 지휘자가 되려면 세계에서 연주해야 하지 않나?
"그렇다. 한국에서는 티켓이 잘 팔리지 않는데, 연주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주가 좋으면 누구나 와서 보게 돼 있다. 내가 가끔 한국에 와서 도움이 되고 싶다. 젊은 친구들에게 길을 열어 줘서 세계에 나가서 연주를 하고 돈을 벌게 하고 싶다."

-한국 음악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매스컴에 부탁하고 싶은 점은 음악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음악이 왜 필요한가? 예술이 왜 필요한가에 초점을 맞춰 달라는 것이다.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이 지금까지 잘 살 수 있는 이유 중에 문화가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의 좋은 점을 알리는 것이 매스컴의 역할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체계가 잡혀있지 못하다."

-지휘자로서 중요한 점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한국에 와서 아쉬운 점은?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지휘자는 아시아에서 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에서 이슈화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난 후 소감….

"100% 만족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금메달을 따고 1등을 해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스포츠 강국인 만큼 스포츠 선수들이 유명하다. 순간적인 폭발성은 스포츠가 더욱 강하지만 미래성을 따지면 예술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계에서 유명 한국인이 많지 않다. 모스크바는 당대의 세계적인 지휘자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주최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 주최 측에서 부르는 연주자는 유명한 연주자다. 한국도 이러한 연주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지휘자 중에 한국악기를 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내가 어떤 기업인을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인 1세대는 예술에 관심이 없다. 2세대는 관심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아 기업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를 하면 차별화된 브랜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고인들 중에 오케스트라는 관객이 많아야 2000명에 불과하지만, 가수 1명은 관객 1만 명 이상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1만 명의 관객이 이익이지만 오케스트라 관객중 100명만 기업인이라 가정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홍보효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이 음악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문화가 없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1년에 몇 회 정도 연주하나?

"연주 횟수는 서유럽 반, 동유럽 반이다. 1년에 50~60회 정도 지휘를 한다. 예술가는 봉사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서유럽에서는 돈을 많이 주고, 러시아는 영향력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예술과 기업의 관계는?

"카렌이 죽을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일본의 기업인이다. 예술은 기업인이 빠지면 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의 투자가 없으면 예술을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곳저곳 투자했다가 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 등 외국에서 연주할 때 포인트는 어디에다 두었나?

"포인트는 딱 하나다. 한국 사람도 너희들보다 잘할 수 있다. 나는 연주에 들어가면 표정부터 바뀐다. 러시아의 콧대는 러시아에서 일한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높다. 그러나 내가 러시아에서 커피를 먹으러 가면 비켜준다. 이러한 보람을 느낀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연주가 끝나고 발을 구르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것은 카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음악적 자부심이 뛰어난 독일에서 한국인이 와서 이러한 박수를 받았다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럴 때 느끼는 희열은 대단하다."

-처음 유럽시장을 뚫을 때 많이 힘들지 않았나?

"영화 '바람의 파이터'와 똑같다. 싸움만 아니지 똑같다. 무작정 찾아가서 연주를 할 때 한번이라도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지휘했다. 10년 동안 300편을 넘는 지휘를 하면서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럼 어느 정도 지휘를 쌓은 지금 외국 생활에서 힘든 점은?

"매일매일 힘들다. 가족이 떨어져 있고 매일 호텔에서 자고 점심도 못 먹는 등 힘든 점은 많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주 후에 느끼는 희열이 있다. 또 내가 고생해서 한번 외국에 길을 뚫어 놓으면 내 뒤에 오는 후배들이 조금 더 편하게 지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한국 음악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리더의 부재다. 음악을 이용하는 음악인이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 그러한 리더가 필요하다."

◇이영칠 지휘자, 그는 누구인가?


이영칠 지휘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살에 음악을 시작해 미국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호른을 전공한 뒤 지휘자로 전향했다. 불가리아 소피아의 음악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공부한 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1월에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서 지휘봉을 잡은 바 있으며, 지난 10월 13일에는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PR)를 지휘했다.

한편 NPR은 2003년 러시아 문화부가 창설한 오케스트라로,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가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러시아의 최고 교향악단으로 자리잡았다.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조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