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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7성급 호텔 최초의 여성‧한국인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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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7성급 호텔 최초의 여성‧한국인 셰프

[한국의 맛] 강의‧방송‧출판‧요리계의 팔방미인 올리비아 리

'나쁜 여자 착한 요리'로 유명…도전과 열정의 셰프


버즈호텔 근무 3개월 만에 은상 수상…스카웃 제의


프랑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찾아 미련없이 떠나


'이밥차(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로 알찬 메뉴 개발


한식은 웰빙음식 '情'마케팅 겸비하면 세계화 성공


▲올리비아리셰프/사진=김영웅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올리비아리셰프/사진=김영웅기자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 기자] 두바이의 7성급호텔로 유명한 버즈 알 아랍 호텔 최초의 한국인 셰프 올리비아 리. 그 좋은 자리를 아무런 미련 없이 팽개치고 그는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찾아 떠났다. 단지 더 뛰어난 셰프가 되기 위해 무작정 ‘맛의 나라’ 프랑스로 날아간 것이다. 기회가 왔다하면 놓치지 않고 욕심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도전하는 그녀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리비아 리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셰프다. 지금은 돈을 버는 대신 요리라는 장르를 통해 본인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펼쳐낸다. 백석문화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출판사에서 요리 책을 기획하고, ‘나쁜 여자, 착한 요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요리계의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올리비아 리를 만나 열정을 무기로 숱한 신화를 써온 과정을 탐사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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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DCT호텔 조리학교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미국에서 유학중 우연한 기회에 스위스 DCT호텔 조리학교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전문적인 호텔 요리와 매니지먼트는 물론 다양한 유럽 문화와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한국 수업이 빡세다고 하지만 스위스 요리학교는 한국보다 더 빡세다고나 할까요. 아침 7시부터 첫 수업을 시작해서 밤 10시에 끝나는 스파르타식 커리큘럼이 압권이에요. 팀 과제도 많아서 프로젝트를 마치면 새벽에나 잠들 수 있었어요. 제가 어떤 프리젠테이션도 자신 있게 진행할 수 있는 건 그때 받은 교육 덕분인 것 같아요. 체력도요.”

-조리학교를 졸업한 후 진로는 어디로 잡았습니까?

“두바이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두바이로 갔어요. 7성급호텔 버즈 알 아랍에서 디저트를 공부하게 되었고, 두바이에서 열린 요리대회에서 3개월 만에 은상을 탔어요. 그런데 두바이에서 일할 때 한 행사에서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야닉 알레노(Alleno)와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 분과 일하면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테크닉과 색다른 맛을 알게 되었죠. ‘파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불어라곤 단 네 마디(봉쥬르, 싸바, 메르시, 오흐봐)밖에 하지 못했는데도요.”

무작정 찾아간 파리에서의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두바이에 있을 때는 8개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인정받던 그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도 잘 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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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말리는 길을 갔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된 생활에 우울함까지 찾아왔어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급적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꿈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어요.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었지요.”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은 파리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미슐랭 1스타 요리사를 만났고, 그가 파리생활의 커다란 조력자 역할을 했다. ‘라 트뤼프 누아르’(La Truffe Noire·검은 송로버섯)란 이름처럼 송로버섯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식당이었다. 여기서 일하며 처음 요리를 배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파리시장에 나갔어요. 파리의 다양한 식재료를 구경하며 다니다가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돌아오면 8시였어요. 오너셰프인 그는 항상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지만 그냥 버려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어요. 송로버섯을 얇게 썰다가 모양이 잘못되면, 그것을 다져서 가니시(고명)로 쓰거나 다른 요리에 사용했어요. 오너셰프의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식재료가 아깝다는 걸 더 피부로 느끼는 듯했어요. 이곳에서 일하며 식재료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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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 알레노 셰프와는 일을 못하셨나요?

“라 트뤼프 누아르는 제 실력을 인정하며 월급도 주고 야닉 알레노 셰프에게 저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주었어요. 2007년 7월 결국 힘들게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그의 주방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어요. 일반고에서 공부를 잘해도 과학고와 외국어고에 가면 평범해지는 것과 비슷했어요. 여자와 동양인 셰프는 처음이었고, 다른 동료들이 저를 시기질투하며 고의로 괴롭히고 바닥 청소부터 시켰어요. 경력은 아예 무시되었고, 여기서 무엇을 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어렸을 때 잘 그렸던 그림을 떠올리며 음식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야닉 알레노 셰프와 함께 접시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1년 간 지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자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그토록 바라던 우상을 만났는데 왜 슬럼프를 겪었습니까?

“그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지만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성공과 행복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미슐랭 3스타라는 별을 지키기 위해 더 바쁘고 1년 전에 봤던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가 사라졌어요. 야닉 알레노의 지인들도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지만 오피스에서 만날 시간이 없어 다이닝룸에서 사교를 하는 등 성공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아무리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2008년 6월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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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당시 멋진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주방에서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그때마다 셰프들은 하나같이 ‘먹어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어떤 거 같아’라고 물었어요. 그것이 그들이 가르쳐주는 방식이었어요. 직접 먹어보고 맛을 기억하고 이건 어떻게 만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나누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2008년 귀국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CJ와 한화호텔앤리조트에서 강의와 상품메뉴개발을 담당했어요. 또 기업특강, 강연, 레스토랑 컨설팅,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지금은 월간 ‘이밥차(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의 마케팅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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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으로는 밥상을 차리기가 불가능하지 않는지요?

“저도 처음에는 파인 다이닝에 관심이 많았지만, 파인 다이닝으로는 돈을 벌기가 힘들다는 걸 알았어요.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설렁탕 등 대중들이 많이 찾는 대중적인 메뉴를 원했어요. 그때 대중들은 누구나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실용적인 요리를 원한다는 걸 알았고요. 그래서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라는 콘셉트로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맛난 밥상을 차리는 다양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물론 단돈 2000원으로 한 상 차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도록 한 게 호응을 얻는 것 같습니다.”

-외국 셰프들에게 한국요리를 해준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한류 덕분에 많은 분들이 한식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제가 외국에 있을 때만 해도 ‘한국은 어디니?’라던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그런 외국친구에게 제 사비를 털어가며 한식을 만들고 사 먹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지는 게 보였어요. 일본인친구들은 배용준씨나 보아를 보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자연스레 한식도 접하게 됐지요. 홍콩이나 미국, 프랑스 친구들은 가수 비가 좋아서 한식에 관심을 가졌고요. 제 지인들은 제가 좋아서 한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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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에는 디저트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식에 디저트가 발달하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프랑스가 디저트의 천국이 된 이유는 간단해요. 프랑스 산 과일이 맛있지 않아서예요. 당도가 높은 우리나라 과일은 껍질만 벗겨 먹어도 그 자체로 디저트의 역할을 톡톡히 하죠. 우리는 사과나 배가 맛있으니까 그대로 내놓는 반면에 프랑스는 과일이 맛이 없다 보니까 와인이나 설탕에 졸여서 디저트로 만들어 먹어요.”

-셰프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열정하고 성실이지요.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요리는 재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재능보다는 열정적으로 쏟아붓는 노력이 더 소중해요.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먹어보아야 됩니다. 최고의 맛을 알아야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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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 프라이팬을 쥐었다고 들었는데, 일찍이 요리와 친해진 배경이 있습니까?

바쁜 부모님 대신 외할머니와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했어요. 외할머니를 도와 팥죽의 새알심을 만들고 김장 재료 손질을 도우며 놀이처럼 요리를 접했어요. 부모님들이 외할머니와 만든 팥죽이나 김치를 드시고는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땐 진짜로 제가 요리를 잘하는 줄로 알았어요. 그 칭찬이 요리의 세계로 접어들게 했어요.”

-다양한 외국요리를 접해본 셰프로서 한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직도 한식은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뉴욕의 ‘정’ 식당이 작년에 미슐랭 2스타를 받았지만 한식에 대한 체계적인 마케팅이 부족한 것 같아요. 지금은 한류로 인해 과거에 비해 상황은 좋아졌어요. 가수 싸이, 비, 보아를 비롯해 배우 배용준, 이영애 등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여세를 몰아 한식이 자리를 잡아야 해요. 스타 셰프를 키우려면 외국어가 가능한 사람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국 요리는 맛이 없지만 영국인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스타가 된 후 사람들은 영국 요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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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한국을 잘 모른다는 점이지요. 매력적인 사람이나 문화를 알게 되면 경험해보고 싶어지잖아요? 우선은 재미있게 알려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제이미 올리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정(情) 문화가 강해서 푸짐하게 대접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런 문화를 함께 알려주면서 건강한 웰빙음식, 그리고 다이어트식을 적절하게 녹인다면 좋을 것 같아요”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봅니까?

“한식의 매력이자 강점은 건강한 웰빙 음식이라는 점이에요. 우리는 요리를 할 때 항상 영양소의 균형을 생각하잖아요. 칼로리도 높지 않고, 김치나 된장 같은 건강한 발효음식을 기본적으로 먹죠. 그런데 맛도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두바이에 있을 때 제 별명이 김치였어요. 셰프들이 김치를 먹어보고서는 생각보다 ‘맛있네’ 라고 이야기해요. 김치가 발효되면서 냄새가 나지만 이걸 문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추세입니다.”

-요리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인생을 배웠어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제가 요리를 할 때면 사람이 바뀌어요. 평소에는 힘들다고 앵앵거리다가도 요리를 하면 힘든 일도 잘 참아내거든요. 또 요리 한 접시가 나오려면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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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철학이 궁금합니다.

“저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훌륭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자 진정성이에요.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그들의 직업, 특징들을 다 고려하고 파악해야 해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경우에는 누구든 좋아할 수 있는 요리를 선택해야 하지요. 재료도 마찬가지예요. 재료를 고를 때는 정말 까다로워야 해요. 해산물을 구입할 때에는 수산시장에, 채소류는 가락시장에 가는 게 좋지요. 레시피에 적힌 재료에 매달리기보다는 제철재료를 사용해보세요. 더 맛있어질 거예요”

“저의 20대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어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죠”라고 말하는 올리비아 리. 그럼에도 그러한 20대의 과정을 거쳐왔기에 “지금의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라는 말로 행복한 인터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