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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 짜장면의 달인' 4초에 한그릇 만드는 '神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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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 짜장면의 달인' 4초에 한그릇 만드는 '神의 손'

[한국의 맛] 중식당 신(XIN) 유방녕 오너 셰프

중식요리 40여년 가방끈은 짧고 요리인생은 길다


청와대‧국회‧정주영 회장 등 연회 출장요리 단골로


플라자호텔 중식당 주방장 끝으로 오너셰프 변신


편견 깨고 하얀 짜장면‧빨간 짜장면 선보여 '대박'

레시피 등 개발 조리사 체인사업 오픈 도와줄 것


▲중식당신(XIN)유방녕오너셰프/사진=김영웅기자
▲중식당신(XIN)유방녕오너셰프/사진=김영웅기자
중식당 신(XIN)의 유방녕 오너 셰프는 ‘짜장면의 달인’이다. 불과 4초 만에 짜장면 한 그릇을 뚝딱 뽑아낸다. 그의 빠른 손놀림을 보면 완전 자동화된 기계 같다. 짧은 가방끈을 뒤로 하고 40여년 간 중식당에서 한 우물을 파며 잔뼈가 굵은 덕분이다.

그는 플라자호텔 중식당 도원의 주방장을 끝으로 오너 셰프로 변신해 중식당 신을 오픈했다. 사당점, 신천점, 퇴계로점, 인천 송도점, 강화점 등 5개의 중식당 신을 경영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연 매출 45억 원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으로 변신한 유방녕 오너 셰프를 만났다.

<편집자 주>


-열넷 살부터 요리를 시작하셨다면서요?

“가방끈은 짧고 요리인생은 길지요. 1972년 열넷 살부터 객지에서 생활하며 요리에 발을 들여다 놓았어요. 배달에서부터 주방 식기를 닦고 면 뽑는 것까지 중식당에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심지어 홀에서 서빙도 해봤어요. 3년간의 배달과 웨이터 생활을 거쳐 1975년 남산의 중식당 희래등에 입사해 주방에 입문했고 1980년 동보성에서 본격적인 중화요리를 했지요. 1981년에는 대구 한일호텔에서 부주방장에 올랐어요. 사실 수타면은 열다섯 살부터 시작해 수타 짜장면의 달인이 되었어요.”

-수타면과 기계면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가 처음 짜장면을 만들 때만해도 전부 수타면이었어요. 수타면은 부드러운 반면에 기계면은 밀가루의 조밀도가 촘촘해져 쫀득하긴 하지만 약간 질긴 편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으니 인천 송도에서 다시 수타면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5개의 중식당 신을 오픈해 성공한 비결이 궁금합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나도 훗날 사장 한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지요. 마음으로 준비하는 동시에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어요. 사업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화교 3세로 가족이 요리사라면서요?

“청나라 말기에 할아버지께서 한국으로 건너오셔서 인천에 둥지를 트셨어요. 부친은 서울에서 유명한 아서원에서 중화요리를 하셨고, 동생(유방원)은 짜장면 왕중왕의 달인으로 뽑혔어요.”

-열넷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식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가 있습니까?

“1970년대는 가난해 배가 고파 일을 해야 했어요. 책만 보면 졸리고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딴다는 건 언감생심이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요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버는 게 낫다고 판단해 일찍이 세상으로 나왔어요.”

-웍을 돌리다가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주방에 있을 때는 법 없이도 살았는데 경영하다 보니 법을 알아야 했어요. 음식점 5곳을 여는 동안 많은 사람이 도와줬지만 해코지를 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주변 분의 말을 믿고 일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딴소리를 하며 법대로 하자는 바람에 참 힘들었어요. 가계를 얻는 계약서 작성부터 요리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 경영에 눈을 떠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플라자호텔에서 나와 신을 시작한 지 3~4년 만에 자리를 잡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가게가 여러 개니까 돈 많이 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꽃은 피었지만 아직 열매는 맺지 못했어요. 어떻게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까, 고민 중입니다. 원래 저의 꿈은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저는 레시피와 요리에 필요한 소스를 개발해 중국집을 오픈하고 싶은 사람에게 체인사업을 하도록 도와주는 거였어요. 지금까지 중식 체인사업이 활성화 되지 않은 건 레시피가 과학화되어 있지 않아서이지요. 제가 그 일을 하면 조리사의 이름을 내건 짬뽕 전문점, 짜장 전문점, 탕수육 전문점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플라자호텔 도원에서는 몇 년간 일했습니까?

“1983년에 입사해 2010년 2월 퇴사할 때까지 29년간 일했어요. 스물일곱 살 때 퍼스트 쿡으로 들어가 덩치도 작고 키도 작았지만 청와대 출장요리를 시작으로 총리공관, 국회 등으로 출장요리를 많이 다녔어요. 청와대에 들어갈 땐 보안검사를 받느라 추운 겨울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실 때는 모자를 쓰고 조리복을 입은 채 차를 타고 무사통과 했어요. 그 만큼 끗발이 좋았어요.”

-정부 기관 이외에도 출장요리를 나가는지요?

“왕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도 출장요리를 자주 나갔습니다. 성북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현대그룹 영빈관에 한 달에 서너 번씩 다녔어요. 당시 1980년대에 현대건설이 중동에서 한창 건설을 할 때인데, 계약이 성사되면 준비한 요리가 나가고, 계약에 실패하면 준비한 요리를 개봉도 못한 채 싸들고 돌아왔어요. 경비는 다 부담해주지만 조리사로서 정성껏 만든 요리가 손님 앞에 나가지 못할 때에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계약이 성사되어 준비해간 요리가 식탁에 올라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올 때면 낚시꾼이 낚싯대를 잡아 손맛을 느끼듯이 기분이 최고였어요.”

-플라자호텔의 대표 중식 메뉴를 손꼽는다면….

“조리사의 손맛과 경험이 녹아 있는 동파육, 통 상어 지느러미, 한우 안심 상추쌈요리가 대표적인 요리라 할 수 있어요. 한우 안심 상추쌈은 국수를 튀겨 상추에 한우 안심과 국수를 싸서 먹는데, 일품요리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였어요.”

-요리철학이 궁금합니다.

“요리는 예술인 동시에 과학이어야 해요.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만점짜리 요리는 있을 수가 없어요. 마치 영화 속의 요물이나 괴물인 것처럼 요리도 수시로 변하거든요. 그래서 정확한 답이 있을 수 없기에 손님의 기호에 따라 조리사가 맞추어 주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손님이 지적하는 사항을 빼곡히 메모해두었다가 다음에 오면 그걸 반영해 맞춤요리를 해드리고 있어요. 손님의 기호를 적어놓은 다이어리를 모아놓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스물여섯 권쯤 될 겁니다.”

-특히 경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경영이라는 거창한 말 대신에 일단은 우리 가게 음식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합니다. 음식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 다음에 영업이익을 고려하는 것이지요. 최근 ‘짜장면은 검어야 한다’라는 편견을 깬 하얀 짜장면과 빨간 짜장면을 개발했어요. 특히 짜장면 소스를 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옛 맛인 된장 향기가 납니다. 이처럼 손님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메뉴를 개발해 중식당 신(XIN) 만의 음식 인지도를 높이는데 당분간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색깔 짜장면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짜장면에 콩, 게살, 야채와 함께 고기 대신 두부가 들어가는 웰빙식 짜장면입니다. 빨간 짜장면은 사천식으로 조금 맵게 만들었고, 하얀 짜장면은 게살 맛이 풍기도록 만들었어요. 옛날에는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끝나면 짜장면 한 그릇 먹은 게 자랑이 되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 새롭고 특별한 맛을 주지 않으면 손님이 외면하게 됩니다. 대부분 빨간 짜장면과 하얀 짜장면은 손님들이 익숙한 검은 짜장과 달라서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손님들이 훨씬 더 좋아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몇 년 동안 5곳에서 중식당을 경영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어요.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파악했고요. 이젠 조금 천천히 해가며 중식 체인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자본금 1억에서 1억5000만원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해놓고 있어요. 음식도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깔끔하고…. 특히 전문 조리사가 아니더라도 제가 개발해 놓은 소스를 이용하고 간단한 조리기술만 배우면 곧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식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조리사는 ‘본(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음식은 손이 많이 가야 맛있어요. 그런데 요즘 후배들을 보면 너무나 간단하고 쉽게만 하려고 해요. 손이 많이 가면 재료비를 적게 들이고도 맛을 낼 수 있어요. 그것이 요리를 하는 조리사의 참맛이자 도리가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조리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흘러야 알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따라서 너무 서둘러 주방장이 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요리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유방녕 오너 셰프는 조리사라면 손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손님이 ‘탕수육 소스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조리사는 고기 자체에 간을 해 손님이 먹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손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는 고지식한 조리사는 손님이 튀김고기를 먹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진짜 탕수육 소스를 빼고 튀긴 고기만 내놓게 된다는 것이다.

늘 부드러운 표정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도전하는 유방녕 오너 셰프. 달인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요리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끝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정녕 아름다운 조리사의 모습이었다.

[노정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