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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 정승의 전생(前生)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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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 정승의 전생(前生) 부모

[강종성의 이야기보따리(19)]

[글로벌이코노믹=강종성 이야기꾼] 황희 정승이 무슨 죄랴마는, 하 유명한 재상이다 보니, 그분의 이름이 팔려서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오랜 옛날로 올라가겠지만, 평양 성중에 경사가 났다.
감사가 새로 도임한 것이다.

남녀노소 온 부중은 들끓어 그 근엄한 행차 구경을 나섰다.

어느 중년 부부가 어린 아들아이 하나를 어깨에 무동을 태워서 데리고 구경을 하는데, 어린 눈에도 감사의 모습이 무던히도 훌륭해 보였던지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이담에 커서 저렇게 될 테야』

두 내외는 서글픈 웃음을 띤 채 서로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또 한 번 같은 소리를 한다.
『나도 이담에 크면 평안감사 될 테야. 그럼 엄마 좋지?』

소년은 영리한 눈알을 굴리어 아버지의 기색을 살폈다.

아버지는 이 똘똘한 아들에게 다음에 더 큰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타이르듯 설명하였다.

자기네는 상놈이라는 것, 상놈은 공부도 않는 것이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그렇게 될 생각말고, 아버지 하자는 대로 장사 일이나 배워서 살아야 한다고.

그 날 저녁 아이는 밥을 안 먹었다. 자면서도 꽁꽁 안간힘을 쓰더니, 이튿날 아침도 안 뜬다. 그리곤 곡기를 똑 끊고 몸져누워 내내 그 길로 죽고 말았다.

가엾은 이 애는

『어차피 훌륭하게 못 될 바에야 시시하게 살아서 무엇하랴?』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득(晩得)으로 낳은 외아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은 두 내외는, 다시 더 낳아 볼 생각도 못한 채 서로 의지하여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그래도 그애 죽은 날이 다가오면 음식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 주고 하며.

그런데 서울 황씨 가문에 태어난 한 도련님이, 철 나자부터 야릇한, 일을 늘 겪는다.

꿈속에서 치르는 일인데, 어딘 무척 머나먼 길을 가는 것이다.

아주 어려서 일은 마치 모르나, 전에도 이맘때면 해마다 한 번씩 가곤 했던 그 길이다.

그리고 가보면 늘 똑같은 집인데, 무척 정다운 두 내외의 마중을 받아,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는 돌아오는 것이다.

그 두 분은 자기를 무척 귀여워해 주고, 또 몇 차례 만나는 사이에 아주 친부모처럼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날짜를 알게 또 뒤로, 기억해 두고 보았더니 해마다 늘 같은 날인 것이 틀림없다.

(이상도 하다. 내가 누구 제사를 먹는 거나 아닐까?)

그러는 동안에 남달리 지혜가 있는 이 소년은 학업에 정진하여 과거를 치르고 벼슬길에 올랐다.

그 동안도 그 날이면 으레 먼 길을 가고 또 으레 그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오곤 한다.

이리 하기를 여러 해 만에 벼슬을 돋우어 평안감사로 제수되었다.

도임하여 몇몇 공사를 치르고 쉬는데, 그 날이 하필이면 그 날이다.

종일 피곤한 몸을 잠깐 안석에 기대어 쉬자니, 오늘도 그 길 걸음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굉장히 가깝다.

감영에서 삼문을 나서 몇 번 꺾이니까 이내 거기다.

그 집 문전에 당도했다고 느꼈는데 잠이 깨었다.

하도 신기하여 설렁줄을 흔들어 통인을 불렀다.

『너 나하고 잠깐 저기 좀 가자』

『초행이실 텐데 어디를 이 밤중에.............』

『잔소린 그만하고 어서 초롱불 들고 앞장을 서라』

삼문을 지나서 보니 꿈에 본 그대로다.

통인이 놀랄 정도로 고삿을 쉽게 찾아, 한 골목에 다다르니 과연 문이 열려 있고 등불이 비친다.

감사는 서슴치 않고 안마당으로 썩 들어섰다.

『거 뉘시오?』

내다보는데 늘 꿈이면 보던 바로 그 부부다.

젯상도 차려져 있다.

신분을 밝히고 어인 제사임을 물으니, 들어 앉으라면서 눈물 섞어 지나간 일을 설명해 들려준다.

감사도 아주 어려서부터 자기가 겪은 일을 얘기하고, 오늘 찾아온 일을 설파하였다.

『전생 부모님을 이제사 찾아 뵙습니다』

『그 애가 다시 태어나 기어코 소원을 풀고야 말았구랴!』

이리하여 황 감사는 평생토록 전생과 이승 부모를 똑같이 섬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