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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데이터 기반한 의사결정이 위험요소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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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데이터 기반한 의사결정이 위험요소 최소화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6)]

(6)현대차의 시스템: 경영도구 & 운영


▲현대자동차울산1공장에서비정규직노조의파업에회사측이대체인력을투입하면서몸싸움이벌어지고있다.
▲현대자동차울산1공장에서비정규직노조의파업에회사측이대체인력을투입하면서몸싸움이벌어지고있다.
[글로벌이코노믹=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국내 대기업 모두 시스템(System)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체계적인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 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운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단순히 하드웨어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21세기가 정보화시대라고 하니까 지난 10여 년 동안 컴퓨터를 보급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일만 열심히 한 정부 관료들과 마찬가지 수준이다. 현대차의 기업문화를 진단하기 위해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SWEAT Model의 5번째 DNA인 시스템을 경영도구(methodology)와 운영(operation) 측면에서 평가해 보자.

선대 경영스타일 답습보다 시대적 요구 받아들여야

현대와 현대차의 경영은 ‘독불장군형 경영’으로 불린다. 어떤 지시도 위에서 했다면 따른다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회장의 지시가 곧 법이라는 인식이다. 사업경험도 없고, 대외정보에 무지했던 1950~1970년대 경영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직관과 판단력을 기반으로 뚝심으로 의사결정을 밀어부쳤다. 성공적인 스토리도 많지만 실패한 스토리도 많다. 실패한 스토리는 성공적인 스토리나 외형적인 성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현대식의 경영은 회장이 전지전능해 항상 합리적이고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전제하면 되지만, 세상에 이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한 경영방식이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신사업이나 해외사업의 경우 사회·경제적 외부환경이 복잡하기 때문에 회장이 자신의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조직 내·외부의 정보를 취합하는 경영도구, 즉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보와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만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글로벌 기업 경영자는 없다. 현대차는 최소한의 경영정보를 취합하는 경영도구는 있지만, 이는 보조자료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스템이나 규정에 의하기보다는 인치(人治)가 이뤄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산업에 전문성을 가졌다거나 경험을 축적한 것도 아니다. 경영권분쟁의 결과 분가하면서 자동차를 선택했을 뿐이다. 과감한 설비투자와 증산으로 경기 호황에 잘 편승해 판매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했지만 품질이나 디자인 등 본원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창업자의 경영노하우가 2세, 3세로 이어지는지 여부도 경영도구 측면에서 짚어봐야 한다. 현대차는 현대그룹에서 분가했기 때문에 창업자를 정주영 회장으로 봐야 한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원칙을 세웠고, 본인이 직접 현장을 지휘하면서 그룹을 일궜다. 2세로서 현대차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정몽구도 현장을 중시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과감한 의사결정을 주로 한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이자 계승자로 지목된 정의선 부회장도 아버지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현장을 중시해 본인이 직접 현장을 뛰어다닌다고 한다.

정의선 부회장은 할아버지 정주영 회장,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시대적 변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서는 밀어붙이기식 경영이 통했지만 현재 혹은 앞으로는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먹고 살기 위해 머슴이나 종이라고 불려도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신세대는 자신의 소신과 개성을 중시해 기존의 관행이나 문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해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양한 경영상황에 신축적 대응할 수 있는 지혜 필요


현대차가 삼성이나 LG에 비해 시스템은 낙후되어 있지만 단기간에 뛰어난 실적을 낸 것은 외부적 요인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차는 전략적인 의사결정은 회장의 직관에 의존하고 업무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한다. 현대차는 부품공급업체를 관리하는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이하 SCM) 시스템이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수천 개의 1, 2, 3차 공급업체에 대한 관리로 부품조달이 최적화되어 있다.

▲현대자동차가실시한'더브릴리언트카운트다운2013'캠페인
▲현대자동차가실시한'더브릴리언트카운트다운2013'캠페인
SCM은 현대차가 중국, 인도, 미국, 브라질 등 해외생산기지를 개척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차가 해외로 진출하면서 주요 핵심부품업체와 현대모비스 등 관련 계열사와 동반진출하기도 하지만 주요 부품은 국내에 의존하고 있어 SCM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다. 자동차는 완성차 업체간의 경쟁이 아니라 수천 개의 부품업체와 완성차 업체가 연결된 생태계의 경쟁이므로 이들 기업을 연결하는 시스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형적으로 아주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차의 SCM도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몇 년 전 유명 자동차 부품업체의 컨설팅을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매출액이 수천억 원을 넘는 기업인데 순이익은 아주 미미한 수순이었다. 영업이익이 매출액의 1%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그 영업이익의 수십 배가 넘는 돈이 물류비로 지급되고 있었다. 주요 고객인 완성차 업체가 해외사업을 벌이면서 급하게 요청하는 부품수급비용이 매출액에 비해 과다하게 소요되고 있었다.

문제는 자재나 부품의 소요계획이 SCM과 별도로 임기응변(臨機應變)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부품은 차량의 장단기 생산계획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경영은 환율이나 경제성장률에만 연동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을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판매량이 예상치를 웃돌 경우 부품소요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유사한 돌발상황이 주기적이거나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분명 경영도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SCM은 단순히 물류흐름만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납품이 계획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효율성도 떨어지고 부품업체에 물류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비효율성을 용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소해야 한다. 위기대응 경험과 같은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을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매뉴얼(manual)이고, 매뉴얼이 체계화되어 있는 것이 경영도구, 즉 시스템이다.

현대차의 SCM은 1단계의 구축이 완료된 것으로 보이고, 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경영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경험이 용융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부 ICT컨설팅 업체가 시스템 고도화를 하드웨어 측면에서 접근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1차적으로 구축돼 운영한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운영노하우를 시스템에 반영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이 더 중시돼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관련 업계의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 개선이 많이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은 사람(people)에 의존하는 것보다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휴일 없는 조업환경‧사내하청 풀어야 할 과제


현대차가 특별한 생산설비나 기술력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운영(operation)에 있어서는 최대한의 효율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기업이나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보다 떨어지는 설비로 생산효율성은 유사하게 실현하고 있다. 생산인력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인력의 질(quality)도 경쟁사에 비해 열위이지만,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규격화된 통일성이 복잡하지 않은 업무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효율을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양연구소에서 조직기강을 잡는다고 아침 6시 회의를 개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야 2교대나 휴일도 없는 조업으로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압박을 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노동욕구가 감소되는 것도 생산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쟁력과 생산성 운운하면서 조직혁신을 요구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가면 혁신피로감으로 역효과가 나타난다. 현대차에 이런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정부조차도 완성차 업체에 노조와 담합한 장시간의 노동시간이 장기적 측면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장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단속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의 원가경쟁력의 핵심이었던 사내하청(outsourcing)도 문제로 부각되었다. 사내하청이 적법을 가장한 협력업체의 노동력 착취라고 볼 수 있는지가 이슈다. 전문가에 따라 사내하청을 불법적인 근로자파견 혹은 합법적인 도급으로 판단이 엇갈린다.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업무의 내용보다는 작업의 지시자가 누구인지 여부에 따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대법원은 2010년 2년 이상 사내하도급이면 사실상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해 기간에 대한 기준을 명시했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숫자에 대해서도 사측과 노조측의 의견이 다르다. 현대자동차는 6000여명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노조는 1만3000여명이라고 한다. 숫자에 관계없이 사내하청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