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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선생 주역강의(63)] 큰 댐은 사람의 풍수에 따른 운명을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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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선생 주역강의(63)] 큰 댐은 사람의 풍수에 따른 운명을 바꿔


[글로벌이코노믹=초운 김승호 주역연구가]우선 앞쪽에 시냇물이 흐르고 집 뒤쪽으로 깊은 숲과 높은 산이 있습니다. 냇물의 수량은 많으나 흐름이 느려 물의 기운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뒤쪽의 산은 거대한 나무들과 암석으로 조성되어 있어 큰 비가 와도 산으로부터는 흙 한줌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멀리 집터를 떠나 이 산을 올려다보면 능선을 따라 산세가 높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의 흐름은 이 집터에 와서 끝납니다. 이 집터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산의 기운은 바로 이 터에 쏟아붓고 맥이 끝납니다. 그 산은 오로지 이 땅에만 기운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듯 하지요. 산의 맥은 다른 터로 흘러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 곳은 정선군 일대 최고의 땅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 곳을 절집이라고 불렀는데 실제 절은 없고 산기도를 하는 무당이 살았었고, 지금은 서울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이 곳에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습니다. 노추산을 오르는 도로는 이 집 앞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자그마한 다리로 개울을 건너게 되어 있지요. 집에서 보면 다리가 내려다 보이고 다리에서 위쪽을 보면 집이 약간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커다란 변화가 들이닥쳤습니다. 어느해 비가 많이 와서 큰 홍수가 났고 이로 인해 집 앞의 터가 휩쓸려 나가고 다리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다리를 복원하려는데 주변의 둑 자체가 휩쓸려 나갔기 때문에 공사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로가 이 집 앞에 와서 끊기고 노추산 등산로는 완전히 막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도로는 노추산 등산길인 동시에 위쪽 마을로 이어져 다른 도시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길이 끊어져 버렸으니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지요. 정선군은 이 지역 일대에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임시 통로가 만들어졌는데, 이 통로는 도로가 개울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와야 하는 식으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곳은 물길을 겨우 터놓아서 개울의 흐름도 물길이 바뀌었지요. 공사는 두가지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은 둑에 축대를 쌓아올리고 그 다음엔 다리를 건축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다리 공사는 이전 다리보다 수십배에 이르는 대규모였습니다. 그 지역 일대의 땅의 모양이 다 변했기 때문이었지요. 다리 양쪽의 둑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이것을 복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크게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공사는 1년 이상 걸렸습니다. 다리가 만들어지고 나니 거대하고 튼튼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 정도의 다리는 강물이 범람하거나 산사태가 나도 끄떡없을 정도였습니다. 도로는 이제 위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다리를 올라타는 식이 되었고, 다리를 건너서는 다시 높고 넓은 도로로 이어졌습니다. 물길도 예전하고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되었지요.

홍수와 현대의 거대한 건축공사가 주변 일대의 지세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에 따라 지역의 풍수 자체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은 현대에 와서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대한 댐 공사가 바로 좋은 예입니다. 오늘날 큰 댐은 산세 자체를 바꾸어 놓고 주변 일대에 사는 사람의 풍수에 따른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산 주변의 아파트 단지 조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인간은 땅의 위력을 잠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의 변형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여기서는 예로 든 땅을 좀더 설명하겠습니다.

어느 날은 단체로 그곳에 갔다가 여러명이 죽음을 당할 뻔 했습니다. 큰 비가 와서 또 다시 홍수가 났던 것입니다. 물길이 바뀌어 상류의 물살은 천인장의 아랫마당에 들이닥쳤고 이로 인해 마당이 쩍 갈라지면서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땅이 떨어져 나간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