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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의 총파업 멈춘 금융노조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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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의 총파업 멈춘 금융노조의 딜레마

▲ 2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열린 '전국 금융노동자 총파업 진군대회'에서 금융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김재현기자] "달리는 호랑이가 갈 곳을 잃었다"

최근 전국금융산업노조의 총파업 철회를 놓고 빗댄 말이다.
금융노조가 올해 금융권 임금·단체협상 핵심 사안 중 KB금융의 메가뱅크 반대, 우리금융 민영화 졸속 처리 반대, 농협 자율성 확보 등 3대 핵심 사안을 놓고 12년만의 총파업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보여주겠다며 맹렬히 내달렸다.

하지만 금융노조는 지난 29일 오후 긴급 대표자 회의를 열어 총파업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3대 핵심 사안이 해결돼 파업을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낙성조 대변인은 "파업을 연기한 것은 정부와 사측에 보내는 경고"라며 "20만 대학생 무이자 학자금 지원 등 사회적 약자보호 요구안에 대해 사측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을 겨우 언제든지 파업에 들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내부에서도 금융노조의 행보가 "사회적 약자편에 서자던 노조가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려고 했던 정치적인 구호만 외친 것 아니냐"며 싸잡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왜 호랑이와 같았던 금융노조의 기세가 땅에 추락했는지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금융노조의 지부 중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KB은행과 우리은행, 농협중앙회 지부들이 한 발 물러났기 때문이다. KB은행과 우리은행은 우리금융 민영화 연내 무산으로, 농협 지부는 정부와 맺었던 MOU 철회의 비현실성으로 딜레마에 빠져 들었다.
금융노조에 속해 있던 한 은행 지부 위원장은 "우리가 주장했던 메가뱅크 철회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노조원들에게 총파업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지게 돼 노조의 참여가 힘들어졌다"며 "우리의 주장 역시 허공에서 분산되면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우리금융 매각에 0순위였던 KB금융이 예비입찰자 접수 마감을 이틀 앞두고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되면서부터 파업의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여기에 우리은행 지부 역시 유력한 인수 후보인 KB금융의 메가뱅크에 반대했던 의지가 한풀 꺽였다. 이를 지켜보던 농협중앙회 역시 총파업의 총대를 맬 공산이 커지자 한 발 물러났다.

그동안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는 파업 의지가 어떤 곳보다 대단했다. 총파업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반드시 총파업에 참여하겠다"며 사내 복장 규정을 어겨가며 사복을 입는 노조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경영진에서 제동을 걸었다. 복장 규정을 어기거나 총파업에 참여하는 직원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는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하나 둘씩 사복을 벗고 출근하는 노조원들이 늘어났다.

농협 한 관계자는 "경영진의 압박과 정부와 맺은 정상화 MOU의 폐지가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직원들이 늘어났다"며 "총파업을 했다면 참여하려는 직원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정황을 포착한 금융노조 간부들은 두세차례 비상대책회의를 거듭하면서 총파업 철회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정부와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런 모습에 내부에서도 금융노조의 이같은 행동에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처사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금융노조 지부의 한 노조원은 "우리가 총파업을 하는 의미는 바람직한 한국 금융산업을 위해 시작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외쳤던 명분이 사라지니 앞장은 서고 싶지 않고 뒤를 빠지려는 행태를 보여줬기 때문에 여론은 우리를 정치적인 노조로 보지 않겠냐"며 분노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지난 11일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결렬에 따른 전체 조합원 쟁의행위 찬판투표를 실시해 91%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했다. 금융노조는 ▲20만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 ▲청년층 채용 확대를 통한 청년실업 해소 기여 등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라며 요구조건을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