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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 단과대학의 '기적' 글로벌 인재육성 그 성공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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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 단과대학의 '기적' 글로벌 인재육성 그 성공의 비결

개교 6년만에 100% 취업률 100% 영의강의 화제

“교양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자양분”


나카지마 총장 “특성 없는 대학은 미래가 없다” 강조



▲ ‘지식의 전쟁터’라고 불리는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 국제교양대학의 도서관. 로마의 원형경기장처럼 배치된 서가에 엄청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 국제교양대학 나카지마 미네오(中嶋嶺雄) 총장을 만나다 대담 신현정 교수


일본 시골구석의 작은 단과대학이 ‘기적’을 일으켰다.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에 있는 국제교양대학이 그곳으로, 2004년 학교가 문을 연 지 6년 만에 100% 취업률, 100% 영어 강의, 도쿄대와 교토대 수준의 입시 성적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는 국제교양대학이 어떻게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지를 소개한 『기적의 대학』(나카지마 미네오 지음/새움)의 역자 신현정 교수(가나가와 치과대학)와 나카지마 미네오 총장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바쁘신 일정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의 롤 모델이신 총장님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책들을 보니 역시 교양교육을 강조하시는 총장님답게 독서를 생활화 하고 계시나 봅니다.(웃음) 그런데 책 못지않게 총장실에 유난히 그림들도 많이 걸려있네요. 그림을 수집하시나 봐요.


“사서 모은 것은 아니고 부끄럽지만 모두 제가 그린 것들입니다. 세계 도처에 출장을 다니는데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짬을 내어 그곳의 풍경을 화폭에 담곤 하지요. 모두 제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들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바이올린 연주도 수준급이신 것 같던데, 여러 분야의 예술을 넘나드시는 진짜 교양인시네요. 본인의 교양 못지않게 학생들의 교양교육에도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총장님이 생각하시는 교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교양이란 살아가는 힘이지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자양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네. 그런데 요즘은 교양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총장님이 생각하는 교양교육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행해졌던 전통적인 교육과정과 중세의 일반 교과목을 가리키는 서양의 리버럴 아츠와 자손을 가르친다는 동양적 의미의 교양이란 단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두 개념 사이의 공통점은 교양이란 사람이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하는데 근간이 되는 것, 다시 말해 행동철학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교양교육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실천을 동반하게 하는 것이지요.”

-결국 총장님께서 강조하시는 교양의 중요성이란 실천이나 경험의 중요성이 내포된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사실 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좋든 싫든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교양이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양에는 학문적 토대가 되는 지식이나 비판적 사고와 같은 이성적 접근도 있고, 예술에 대한 향유나 교류와 같은 감성적 접근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접근방식이 조화를 이룰 때 현명한 결단을 내리게 되고, 그 결단이 실천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양이라는 말이 그렇게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는 생각 못했는데 총장님과 이야기 하면서 교양이란 단어를 재발견하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교양교육을 제대로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구요, 결국 교양교육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크게 보면 성숙한 국가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영어를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이제 더 이상 국내의 지식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교양을 배우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저도 20년 가까이 외국어 교육과 취업교육을 해 오면서 항상 추구했던 교육목표가 외국어를 포함해서 삶에 대한 자생력을 길러주는 교육이었는데 그 부분에서 총장님과 생각이 많이 일치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렇지만 총장님께서 영어교육의 중요성에 지나치리만큼 강조하셔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약간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 같은 생각도 드는데….


“그런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웃음) 하지만 외국어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어학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긴 투쟁을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눈뜸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진정한 자아의 발견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학을 배우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언제 시작해도 늦은 것은 아니니 모든 이들이 한번은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교양교육이 사라지게 된 정황에 대해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사라진 시점과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전과 같이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저도 둘 사이에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1년 대학설치기준의 개정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학을 학부중심으로 운영하고 대학의 커리큘럼 편성을 대학에 일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 대학에서는 일반교양 교수나 외국어 교수들의 역할축소로 이어지게 되었고, 종래에는 일반 교양교육이 사라지는 원인이 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적토대가 부족한 대학 신입생들이 교양도 제대로 쌓지 못한 상태로 전공공부로 바로 돌입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전공밖에 모르는, 아니 전공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갖추지 못한 대학졸업자만 양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의 주요 대학 예를 들면 와세다대학 같은 곳에서도 교양학부를 신설하는 등 교양교육 부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데 이는 총장님의 노력이 이제 서서히 결실을 얻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시대는 흔히 융합의 시대가 될 거라고 하지요. 따라서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과 폭넓은 지식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총장님, 이 대학의 캠퍼스는 정말 그림 같은 풍광을 가진 곳인 것 같아요. 도시생활에 찌든 저로서는 너무 부러운 환경이긴 한데요, 패기 왕성한 젊은 학생들이 4년 동안 지내기에는 좀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가요?


“제 생각엔 답답함을 느낄 여유도 없을 것 같은데요. 영어와 씨름하고 교양과 씨름하는 것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랄 테니까요.(웃음)”



-와, 처음엔 많이 힘들겠네요. 적응이 되면 괜찮겠지만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긴 인생에서 일정 기간쯤은 이런 곳에서 칩거를 해 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학문에 몰두해보고 조용히 자신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일리 있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24시간 개방시켜 놓으신 거지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지식의 창고에 자진칩거(?)할 수 있도록이요. 말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곳의 도서관은 제가 본 곳 중에 가장 근사한 도서관인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로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감옥 같은 도서관들만 보다가 자연채광이 되는 천장에 삼나무 냄새가 그윽한 이런 도서관은 정말 한번쯤 갇혀보고 싶은 도서관인 것 같아요(웃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을 아키타의 삼나무를 활용해 재현한 것인데, 지식의 전쟁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수상했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21세기 대학의 글로벌 스탠다드인 국제교양대학을 탄생시킨 것은 역시 근본을 중요시하는 교육목표와 원칙을 지키는 힘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럽과 미국의 유서 깊은 명문 대학들처럼 리버럴 아츠에 충실한 교육을 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교양과 전문지식의 획득을 위해 어학능력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니까요.”


-최근 한국의 대학들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이 불가능한 지방대학이 속출하고 있는데 일본 사정은 어떻습니까?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색이 없는 대학들은 더 이상 미래가 없습니다. 특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지방대학의 경우는 특히 그렇지요.”


-그럼, 일본이나 한국의 대학들도 대학의 자생력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겠네요. 예를 들면 국제교양대학처럼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변혁이 가장 힘든 사회 중의 하나가 대학사회이므로 정말 개혁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교원들이 한마음으로 대학의 위기감을 공유하고, 설령 자신들의 기득권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뚜렷한 교육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동참하려는 의지가 없다면요. 경험적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신설대학이나 법인화되는 대학이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훨씬 수월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교양대학의 성공신화가 한국의 대학들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쁘네요. 사실 총장님을 만나기 오래전부터 저 또한 국제교양대학 같은 대학이 한국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제교양대학과 같은 이상적인 교육은 모든 교육자의 바람이겠지만, 오래된 관행, 그리고 현실에 산적한 문제점들과 온몸으로 맞서 싸우며 꿈을 현실로 바꾸어 가는 교육자들은 정말 극소수이시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총장님은 모든 대학교육 관계자들의 롤모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현정 가나가와 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