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3 16:22
대마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성 아우구스투스는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 계속 보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바닷길로 49.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외국이다. 그야말로 ‘내 땅인 듯, 내 땅 아닌, 내 땅 같은’ 일본 땅이다. 일본의 다른 가장 가까운 섬과의 거리가 73km, 후쿠오카까지는 138km 떨어져 있는 만큼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 훨씬 가까운 섬이다. 그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예로부터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깊었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 콩 등을 답례로 받아 갔으며 조선에 일러서는 대마도를 근거지로 왜구들이 조선의 해안에 출몰하여 그2026.05.27 13:17
어느덧 싱그럽던 신록은 짙어질 대로 짙어져 초록 그늘이 그리운 계절이 된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숲을 보면 무궁무진한 자연의 힘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꽃은 야위고 초록은 살이 찌는 시절이지만 그렇다고 숲에서 모든 꽃이 자취를 감춘 건 아니다. 초록이 대세인 요즘 숲에서 꽃을 보면 더 반갑다. 특히 요즘 산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함박꽃나무의 흰 꽃을 보면 그 맑고 밝은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곤 한다. 흔히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함박꽃나무는 북한에서는 목란(木蘭)이라고 하며 나라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목련과 한 집안이면서도 잎이 핀 뒤에 뒤늦게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는 오월의 숲에서 만날 수 있는2026.05.20 13:39
성큼 다가선 여름, 석모도를 다녀왔다. 내 기억 속의 석모도는 이름보다 먼저 ‘풍경’으로 기억되는 섬이다. 인천 강화군 삼산면에 속하는 이 섬은 강화도 서쪽 끝에 자리해 과거에는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었지만, 2017년 석모대교가 놓이면서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 되었다. 한국의 ‘3대 낙조’와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인 석모도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명소였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데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배로 5∼10분이면 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상 조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낭만의 섬 여행지였다. 내게도 배를 타고 가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2026.05.13 13:52
소공원 못가에 노랑꽃창포가 피었다. 노랑꽃창포는 이름과는 달리 창포와 무관한 붓꽃과에 속하는 유럽과 중동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진한 자색 꽃이 피는 자생종 꽃창포나 붓꽃과 달리 선명한 노란 꽃이 매혹적이다. 봄의 끝자락인 5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노랑꽃창포가 만개한 걸 보니 봄이 이울고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굳이 노랑꽃창포가 아니더라도 여름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라색 등꽃이 지기도 전에 산자락의 아까시나무 숲에선 벌써 꽃들이 만발해 아침저녁으로 달콤한 향기를 마을로 마구마구 내려보낸다. 둘레길을 걷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하얀 찔레꽃이 눈을 찔러 온다. 꽃들이 진 자리를 재빠르게 메우면2026.05.06 13:38
모처럼 설악산으로 숲 트레킹을 다녀왔다. 누군가는 짧은 여행을 산책이라 하고 긴 산책을 여행이라고 했지만, 여행이란 잠시나마 삶의 자장을 벗어나는 일탈 행위다. 기왕에 길을 떠날 거라면 되도록 멀리 가는 게 좋다. 좀 더 먼 길을 떠나야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설악산행 버스에 오른 것은 그런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여름 들머리에 선 듯한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속절없이 지는 봄꽃들의 아쉬움을 설악에서 달래보고 싶어서였다. 봄이 늦은 설악에 가면 봄을 붙들고 피어 있는 꽃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른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서2026.04.29 14:22
불암산으로 철쭉꽃 보러 가던 길에 작은 암자 모퉁이에 황홀할 만큼 눈부시게 핀 등꽃을 보았다. 고사목 등걸을 타고 오른 등나무가 사방으로 덩굴을 뻗어 연보라색 꽃송이를 달고 선 모습이 마치 커다란 꽃다발처럼 보였다. 올 초 세상을 떠난 ‘한국의 장 주네’(프랑스의 부랑아 출신 작가). 지게꾼 시인으로 불린 김신용 시인의 유고 시집의 ‘등꽃 아래’란 시를 떠올린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 등꽃, 환하다.// 제 그늘 너무 짙어 등 하나 켜 놓은 것 같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도 저와 같을까// 대낮에도 밝게 켜 놓은// 저 등, 아래 서면// 그래, 누군가 발 헛디딜 이 없겠다." ('등꽃 아래' 전문) 시인의 시가2026.04.22 20:21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한낮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연신 피어나는 꽃들에 눈길을 주는 사이 공터에도 풀들이 무성해져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그 풀밭에 별들이 내려앉은 듯 생명력 강한 노란 민들레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일찍 꽃을 피운 녀석들은 벌써 둥근 씨앗 뭉치를 단 꽃대를 높이 밀어 올리고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진 벚나무에도 잎이 제법 너풀거릴 정도로 커졌고, 연록의 새잎을 내어 단 느티나무도 한껏 생기 찬 모습이다. 요즘은 눈길 닿는 곳마다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도 대단하지만, 새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우며 연두에서 초록으로 점점 짙어지는 신록의2026.04.15 13:42
봄이 무르익고 있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십 리씩 깊어지는 봄은 이제 절정에 이른 듯하다. 산빛은 어느새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지며 겨울빛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제 숲은 초록의 기운이 꽃의 붉은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속에 벼르던 진달래능선을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도 진달래능선의 진달래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진달래능선을 따라 산행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작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봄엔 기회가 없었다. 북한산은 삼각산·삼봉산 같은 여러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봄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화산(華山2026.04.08 13:16
온통 벚꽃 천지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주말 오후 벚꽃 찬가와도 같은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꽃그늘마저 환한 우이천의 벚꽃나무 아래를 걸었다. 36만 그루의 진해 벚꽃 터널의 장관엔 못 미친다 해도 우이천의 벚꽃도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눈부시고 화사하다. 은빛 햇살 아래 뭉게뭉게 피어난 벚꽃은 세상을 더 환하게 밝혀주고, 하늘을 더 푸르게 만들어 준다. 벚꽃 나무 아래에 서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고, 두께가 느껴지지 않는 흰 꽃2026.04.01 13:25
하루가 다르게 봄빛이 짙어지고 있다. 도봉산 자락에 깃들어 산 뒤로 도봉산은 눈만 뜨면 보이는 산이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산이다. 정다운 이웃 같고 든든한 배후가 되어주는 산이라서 자주 찾는 산이기도 하지만 그 산 어딘가에 있다는 망월사는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망월(望月)이란 말에 스스로 마음에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동안 생각만 했을 뿐 감히 망월사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올봄을 특별하게 기억할 궁리 중에 망월사를 떠올리곤 곧장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망월사역에 내려 산을 향해 걸으며 온몸으로 봄기운을 느낀다. ‘자연은 신이 갈아입는 옷’이라고 했던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처럼 자연2026.03.25 17:20
산수유가 피었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눈길이 닿은 곳에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날마다 지나는 골목이건만 어제는 꽃을 보지 못했는데 간밤에 꽃을 피운 것일까. 볕바른 담장 가에 까치발로 서서 핸드폰으로 산수유꽃 사진을 찍으며 내가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밤새 꽃이 피어난 거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의 말처럼 꽃은 제 안이 뜨거워져야 핀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은 핀다. 산수유가 핀 걸 보니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산수유 가지에 꽃망울을 터뜨린 봄볕의 따사2026.03.18 12:57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1970년대 가수 박인희가 부른 ‘봄이 오는 길’의 일부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중 하나인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봄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인지, 우리가 봄을 찾아 나서는 것인지 가늠이 안 돼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한다. 야생화를 좋아하다 보니 겨울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찍 피어난 복수초나 바람꽃 등을 찾아 잔설에 덮인 계곡을 헤매고 다니는 내게 봄은 늘 찾아 나서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찾아 나서든, 절로 찾아오든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높은 산엔 희끗희끗 눈이 남아있고 꽃샘바2026.03.11 14:18
철원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고향 포천과 잇닿아 있는 데다 군 생활 3년을 보낸 곳이라 익숙하나 마냥 친근할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고장이다. 직탕폭포, 승일교, 고석정, 순담계곡, 와수리, 육단리, 매월동 등 군복을 입고 있던 3년 동안 철원의 산야를 발바닥 아프게 돌아다녔다. 오죽하면 제대하면 철원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까. 하지만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햇볕 속에 된장 익어가듯 고통마저도 세월을 두고 삭히면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추억이란 당의에 싸여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시간의 물살에 씻긴 추억들은 그리움의 음표를 달고 다시 나의 소매를 그곳으로 슬쩍 끌어당긴다. 사회에 나2026.03.04 13:17
모처럼 시간을 내어 포천의 자랑인 직두리 부부송(夫婦松)을 만나러 갔다. 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산빛이 한결 밝아진 듯하다. 우수가 지나면서 나무들이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린 모양이다. 겨우내 칙칙하던 솔잎에도 생기가 돈다. 고향 친구들로부터 부부송에 관한 이야기는 진즉에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부부송을 만나러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무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암수딴그루인 은행나무와 달리 자웅동주(암수한그루)라서 암수 구분이 없다. 그러니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되어 '부부송'이란 이름을 얻은 나무2026.02.25 13:23
우수(雨水) 지나니 개울물 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 입춘이 마음에 봄을 세우는 시기라면 우수는 봄기운이 물처럼 몸을 흐르기 시작하는 때라 할 수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도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고, 선잠을 깬 버들강아지도 하나둘씩 고개를 내미는 것도 우수 무렵이다. 복수초를 보기 위해 홍릉수목원에 다녀왔다. 홍릉수목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입춘이 막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우수가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간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지만, 복수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황금잔 같은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반겨주었다. 복수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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