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인사, 글로벌브랜드 성장 3세경영 위한 최종 포석
부회장은 지휘관 아닌 참모일뿐…배우려는 자세 필요
후계자 자리매김 위해서 자만보다 경험이 우선돼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5일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됐다. 글로벌이코노믹는 삼성의 2인자 자리에 오른 그의 리더십에 대해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진규 소장과 대담을 나눴다. 민진규 소장은 『삼성문화 4.0-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등을 통해 삼성의 기업문화를 분석하고 후계구도 등에 대해 탐구해온 인물이다. <편집자 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반의 예상을 깨고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는데….
-이 부회장의 승진을 놓고 ‘삼성의 일류 글로벌 브랜드 성공’에 따른 보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에 삼성전자 총괄경영을 통한 그룹 3세경영 전환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삼성이 일류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한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능력이나 그의 사장 재임기간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삼성이 그동안 수십 년 동안 노력한 결과가 일류브랜드를 만들었는데, 일부 호사가들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연계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오히려 3세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한 최종 포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회장이라는 직책은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해 회장에게 조언하는 참모의 역할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런 역할을 요구하고, 아마도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전반에 대해 보고하거나 토론할 기회를 많이 줄 것입니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의 생각이나 판단을 수정·보완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회장의 시각과 마인드를 전수해 줄 것이라고 봅니다.”
-이재용 중심의 3세 경영에 접어든 삼성가의 전통적인 오너십이나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삼성의 리더십은 관리자형입니다. 이병철 회장도, 이건희 회장도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새로운 사업보다는 다른 기업이 시행착오를 거친 사업을 선택해 위험을 최소화했고, 정치적 특혜나 대기업의 독과점 사업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리거나 다툴 여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카리스마를 발휘할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한국경제모델 자체가 일본모델을 모방했고 후발주자로서 이점을 향유했기 때문에 더욱 관리형 리더십의 장점이 극대화되었다고 봅니다.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로 관리형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삼성이 처한 현실은 관리형 리더십으로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애플과의 소송문제, 일본기업과의 기술교류문제, 국내 반(反)삼성 여론의 심화, 5대 신수종사업의 부진 등은 단순히 현상유지적 연속 관리가 아니라 과거나 현재와 결별하는 단속적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즉 다시 말해 삼성의 내외부환경이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성장 과정과 후계자 수업 등에서 드러난 공과를 통해 본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재용은 2000년대 초 e삼성을 실패한 후 삼성전자에 복귀해 경영수업을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 신흥시장인 중국에 보내고, 외국의 유력인사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습니다. 삼성전자의 사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고, 삼성의 홍보 특성상 이재용 사장의 업적이 있었다면 대대적으로 알렸을 것인데,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재용 부회장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마찬가지로 관리형 리더십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삼성의 조직이 실행력으로 회장의 관리형 리더십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을 이끌만한 카리스마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이번에 승진한 계열사 사장들도 두드러진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 참모형으로 관리자로서 적합하지만 현장을 주도하고, 조직을 이끌어갈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 수업 패턴과 이재용 부회장의 후계자 수업 패턴은 산업화 발전 시기와 그에 따른 삼성의 성장 전략에 따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 여겨지는데, 어떻습니까?
“한국에서 기업의 후계자 수업이라는 것이 대부분 인맥을 연결해주는 것에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 수업을 받던 산업화 시대에는 국내 정치권, 언론계 등에 우호적인 세력을 확보하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는 국내 정치권과 언론계에 우호적인 세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인맥을 형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주요 국가에도 인맥을 형성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삼성이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에 막대한 금액을 후원하고 이재용을 파견해 실력자들과 교류를 쌓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업무관계를 빌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일본의 유력 기업의 경영진과 대화를 나눈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거미줄처럼 엮인 결혼과 사업연대로 형성한 국내의 인맥보다 친밀도나 유대관계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연결 이후에 본인의 역량과 인격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고, 끊어질 수도 있는 인간관계라고 봐야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을 총괄하더라도 그룹 차원의 경영은 어차피 이건희 회장이 당분간 유지할 것 같은데, 이른바 ‘이건희 섭정 경영’이 이재용 부회장의 ‘젊은 삼성’ 경영 추진에 독이 될까요, 아니면 약이 될까요?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섭정경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부회장은 참모이지 지휘관이 아닙니다. 여전히 삼성의 지휘관은 이건희 회장이므로 섭정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지휘관에게 조언하고, 배우는 학생의 신분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삼성은 일류 글로벌 기업임에도 애플, MS, 구글 등 경쟁상대인 글로벌 IT 기업들과 달리 오너 중심의 수직조직, 오너가의 비밀주의(폐쇄성) 성향이 유독 강합니다.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과 달리 서구식 선진 교육을 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런 취약점을 없애고 개방과 소통의 열린 삼성그룹으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요?
“이재용 부회장이 미국에서 공부를 한 것은 맞지만 서구식 선진교육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보면 이재용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다른 성향을 보여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리더라는 자리는 적당히 쇼맨십도 필요한데, 내성적인 이재용 부회장의 성향으로 볼 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개방적인 조직구조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장악이나 의사결정의 합리성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야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경영총괄을 맡은 이재용 부회장은 당장 국내적으로 차기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대응, 국외적으로 글로벌 재정위기 여파 극복, 애플과 특허소송 처리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난제들을 이겨내고 ‘초일류 삼성’으로 나가려는 이재용 부회장에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부회장은 아직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좀더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합니다. 내부나 주변의 사람도 좋지만 외부의 비평가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글로벌 삼성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칭찬보다는 질책에 익숙해져야 하고, 자만보다는 겸손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주장도 있듯이, 현재 삼성이 원하는 리더십이 카리스마형이라면 본인의 리더십 유형을 바꾸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리형 리더십으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실수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는지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보호막이 남아 있을 때 실수도 하고, 교훈도 얻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