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Top50(25)] 국제기구종사자
정치‧외교 넘어 환경‧여성‧교육…
자신의 관심 영역서 전문가 되고 자원봉사‧인턴십 기회활용을
우리들은 외교관의 꿈을 강요당한 세대다. 한 고등학생의 말이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이후, 1991년 UN가입, 1996년 OECD 가입. 숨 가쁘게 한국은 세계로 달려갔다. ‘바람의 딸’ 한비야가 지구 세 바퀴 반을 걸었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한반도 안에서 복작대며 살던 한국인이 세계를 ‘발견’했다. 2011년 반기문 총장의 UN 사무총장 당선은 그 세계화 바람에 정점을 찍었다. 온 나라가 우리 아이들에게 세계로 나가 ‘글로벌 리더’가 되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렇다면 글로벌 리더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글로벌 리더라 하면 세계 정치나 외교를 주무르는 인물들을 떠올린다.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며 국제고등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꿈도 외교관이나 정치인, 기업인이라고 적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정치나 외교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바로 글로벌 리더이며, 꼭 영어를 잘해야만, 외국에 나가 살아야만 글로벌 리더가 되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세계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연대와 공감의 눈길을 잊지 않는 것, 다른 사람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리더의 자질이라고 믿는다.
그 중에서도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은 열망이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길이 바로 국제기구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UN을 떠올린다. 그러나 UN, OECD, IMF, WHO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국제기구 외에도 각종 국제기구라 부를 수 있는 조직이 전 세계에 적게는 1000개, 많게는 1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이러한 국제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의 비율은 높지 않다. 2013년 OECD 정규직에 4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명의 한국여성이 채용되어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긴 하지만, 몇몇 국제기구를 제외하고는 지원하는 한국인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다고 한다. 어찌보면 그만큼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는 블루오션인 셈이다.
국제기구 종사자를 꿈꾸거나,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에게는 우선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성공하라’(‘UN과 국제기구’ 운영진)를 일독하기를 권한다. 책이 나온 지 6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 속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국제기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인터넷카페인 ‘UN과 국제기구’는 2001년 개설되어 지금은 회원이 5만 명이 넘는다. 이 카페의 운영진들이 각자 자신이 세계무대에 어떻게 진출했는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몇 개의 키워드가 손에 잡히게 되는데, 자원봉사와 인턴십이다. 저마다 전공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국제적 업무에 종사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계기가 우연한 자원봉사나 인턴십인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우연히 떠나게 된 인도여행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의료 보건 분야의 국제활동에 나서게 된 임은경 씨나 뮤지션이 꿈이었던 김광희 씨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김광희 씨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기타를 치며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던 청년이었다. 군대에 가게 된 그는 오로지 새 기타를 살 욕심에 동티모르 파견을 자원한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열악한 현실을 마주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의 물을 훔쳐가던 어린 소녀의 현실을 목도하고, 그는 순수한 눈물을 흘린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비단, 국제기구에 관심 있는 학생뿐만 아니라 20대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자극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김효은의 ‘청춘, 국제기구에 거침없이 도전하라’이다. 전작 ‘외교관은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2008)는 현직 외교관이 쓴 책으로는 유례없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2013년 그녀가 다시 책을 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꿈을 가지고 도전해 볼 목표임을 알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는 그녀의 말처럼, 국제기구에 진출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 다양한 국제기구의 모습들과 구체적 지원 방법 등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책에 따르면, 우선 국제기구에 진출하는데 유리한 전공은 따로 없다. 국제기구의 성격에 따라 환경, 여성, 교육, 경제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므로, 결국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면 국제기구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게 된다. 특히 김효은 씨는 이과 전공자에게 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숫자나 기술로 승부하는 세계에서 언어적 장벽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나 제2외국어에 대한 능력은 필수적이지만, 반드시 해외유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토종 한국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나 인턴십, 계약직 등 다양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위의 두 책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면, 이제 잠시 머리를 식힐 시간이다. 두 책 모두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것은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 사람들의 공존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세계의 여러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한쪽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전염병과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적대적인 민영화 정책으로 제3세계를 황폐화시키는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무대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이해하고 싶다면 세계 분쟁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계는 왜 싸우는가?’(김영미)나 국가 외교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 고발하는 ‘독립외교관(칸 로스)을 권한다.
세계의 문제는 산적해 있고, 분명 우리가 할 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 할 일이라는 것이 단지 우리 국가의 위상을 알리고, 우리 국가의 물건을 많이 파는 일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열정적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정복해야 할 시장으로만 보지 않기를 당부한다. 장 지글러의 말처럼 희망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