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상
울산 서생면 신암리유적 제2지구에서 출토 ▲ 흙으로 빚은 여인상,울산시 서생면 신암리, 1974년 발굴, 신석기시대, 길이 3.6cm 이 조그마한 ‘흙으로 빚은 여인상’은 울산광역시 서생면 신암리유적 제2지구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현재 길이는 3.6cm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제1지구의 중심연대를 신석기시대 조기(6,000~4,500 B.C.E.)로, 제2지구의 중심연대를 신석기시대 중기(3,500~2,500 B.C.E.)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왜 이 여인상을 만든 것일까요? 구석기시대 후기부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가슴, 아랫배, 엉덩이를 강조하여 아기를 임신한 여성을 표현한 조각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조각품들이 수렵채집사회에서 생식과 출산을 상징⋅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너스’라면 팔등신의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인데 가슴과 아랫배, 엉덩이를 강조한 이러한 여인상을 비너스라 하면, 비너스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보이는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의 원래 모습을 이해한다면 왜 이 조각품들을 비너스라 일컫는지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프로디테는 본래 대지를 다스리는 여신이자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지중해 일대에서 널리 숭배되었던 지모신(地母神)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모신 사상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듯, 대지는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는 터전이라는 점에서 신화에서는 그것을 어머니와 같은 여신, 곧 모신(母神)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인류의 강렬한 염원을 담고 있는 풍만한 몸매의 여인상이야말로 비너스의 원형일 것입니다. 대체로 지모신 사상은 수렵채집사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사냥은 주로 남성의 몫이었으며, 채집은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사냥은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 확보가 안정적이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주변의 식물자원을 이용하는 채집은 비록 풍부하지는 못할지라도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빙하기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신석기시대가 되면 동물자원보다 식물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대지를 숭배하는 지모신 사상은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표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신석기사회에서도 이러한 여성 중심 혹은 여신 숭배를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요령지방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紅山文化)의 우하량(牛河梁)유적에서 여신상과 신전터가 확인되었으며, 일본 조몽시대의 수많은 토우(土偶) 역시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한 여인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그 출토 예가 많지 않으나, 울산 신암리유적⋅세죽유적, 전남 완도 여서도패총, 함북 청진 농포패총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습니다. 4점 모두 토제로 그 단면은 판상(板狀)입니다. 얼굴과 팔다리가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일본 조몽시대 초창기∼조기의 토우의 형태와 유사합니다. 4점 중 2점은 성별을 구별할 수 없으나, 신암리와 농포의 출토품은 봉긋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표현을 통해 한눈에 봐도 여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흙뿐만 아니라 돌⋅뼈⋅조개껍데기⋅나무⋅뼈 등을 재료로 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형물은 모두 소형으로 그 크기가 10cm 이내로 손에 완전히 잡힐만한 크기입니다. 대체로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도식화되고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크게 인체상(人體像),얼굴상, 동물상(動物像)으로 구분됩니다. 이것들은 단순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주술행위의 매개체로 보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은 멧돼지